우리는 끊임없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혼신(渾身)을 다했다고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항상 불효 막심이다. 아버지의 삶 앞에는 항상 자식이라는 애물단지가 있다. 이런 아버지의 근심을 아는 자식들이 얼마나 있을까. 못난 자식 때문에 근심으로 막걸리와 담배 한 대 피우시면서 끓는 속을 삭히시던 그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노력 끝에 성공이 온다”는 막걸리 교육… 필자도 밥상머리 교육을 해보지만 효과는 글쎄다. 그래도 계속 해댄다. 인성교육은 이것이 최고다. 과묵하시어 평소 별 말씀이 없지만 막걸리 한 잔 들어가시면 온갖 속 마음을 토해내실 때면 우리는 왜 술만 잡수면 저러실까? 사실 지긋지긋한 잔소리 교육이 시작되곤 했었다. 그리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마당을 쓸던 그런 아버지를 떠올린다.그 아버지의 마음! 육적 아버지나 영적 아버지나 같은 마음임을 이제야 알았던 것을… 오래전 욕심이 없던 그런 때에 쉬고 계시던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동산에서 아버지와의 약속을 실천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다. 해서 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 아들을 부르셨지만 아버지를 피하고 부끄러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깜짝 놀라신 아버지는 “누가 너의 벗었음을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네 여자가 그렇게 하였나이다”. 아~천하에 해서는 안 되는 천명(天命)을 거역한 불효자로 전락해버린 자식을 앞에 놓고 있던 아버지의 심정! 육적인 아버지든 영적 하나님이든 한탄과 탄식은 같을 뿐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자식과 아버지 사이에 커다란 마음의 벽(壁)이 생기면서 자식은 부모 없는 타향살이(생노병사의 삶)를 떠나 버렸다. 자식을 다시 찾고자 하신 친 아버지와 거짓말로 뺏어간 마귀와의 6천년 전쟁의 역사가 시작이 되어버린다. 인생들이 생노병사의 수고하고 근심하게 하심이 아버지 탓이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60년이나 6천년이나 같은 마음은 다를 바가 없다.육적인 아버지야 피조물이기에 재창조의 능력이 없어 어쩔 수 없지만, 영적 아버지인 하나님께서는 수고하고 근심하는 자식을 위한 원대한 재창조의 계획을 생각하시고 시대마다 천인들을 모아 새로운 하늘과 새 땅(新天新地)을 이루시고자 하지만, 이놈의 손(孫)들이 말을 듣지 아니하니 어쩔수가 없었음이라…구약에서 말 잘 듣는 효자(순교한 사람들)들을 영으로라도 살리시려 아들인 죄 없는 예수님을 보내사 계획을 세우시고 그 약속을 이루셨으니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흘리신 대속의 제사였음을 깨닫는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대업을 이루시고 대효자의 힘든 길을 가신 것이다.그리고 신약(=요한계시록)을 약속하시고 때가 되면 이 땅에 와서 모든 것을 알려주시겠다는 새 약속! 그 새 언약이 무엇인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오시는 지를 알아야 한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기에 이제는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를 살리는 그 중한 일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동양의 삼도인 불경(佛經)이나 유경(儒經) 도덕경(道德經)에는 오늘날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원한 마지막 한 곳을 예언하여 그 때를 기다리며 신앙하고 있다. 미륵(彌勒)이나 신선(神仙)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정도령(正道靈),십승지(十乘地)등이 모두가 한 곳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은 바로 성경에 약 6천년 전부터 약속하시고 성취하신 새로운 일들이 이 땅에서 밝히 나타난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이다. 6천년전의 에덴동산 보다 더욱더 크고 아름다운 새로운 아버지의 집에서 천상의 부모님 모시고 욕심없이 모두가 사랑으로 한마음 되어 웃고 신뢰하며 합을 이루는 지구촌 가족을 만들어가는 이것이 약 6천년 전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해서 6천년 간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박혀 있는 악의 뿌리(욕심)를 다 뽑아내고, 마음 밭에 생명나무를 심어 새로운 삶을 시작 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요 바로 충성스러운 자식(孝子)이 되는 길이다. 새 하늘 새 땅에서 천상부모 모시고 즐겁게 사는 것 이것을 이루는 것이 사람이 걸어야 할 정도(正道)이며, 약 6천년전 잃어버린 인간의 본성(本性)을 되찾는 회복의 역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