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신일권기자] 흥해역사문화해설사 양성프로그램 제17회 강의가 11월 28일 오후 6시 흥해읍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현장지원센터에서 이양훈 강사의 ‘훤달 대흥해’란 주제로 열렸다. 본 프로그램은 흥해읍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양훈 강사는 울산소설가협회장, 울산문인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며, 소설 <전화앵>을 지은 작가 이다.이날 이양훈 강사는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타나는 미질부가 바로 흥해이다.”며 “흥해의 고명이 ‘퇴화’로 退火의 ‘退’는 미질(조수의 퇴거인 간조를 의미. 밀다는 뜻도 포함)이며 ‘火’는 벌 즉 들(野)이다.”라고 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어 “930년(고려 태조 13년) 봄 북미질부 성주로서 남미질부 성주를 달래어 니어진(신광)에 내려온 왕건에게 귀부한 훤달은 흥해대사 종명(오키나와 호국사에 걸려 있다가 태평양 전쟁 때에 불탄 종)에 정훤달로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훤달은 우리나라 두 번째 정씨(鄭氏)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타나는 정년(鄭年 일명 鄭連)이 우리나라 최초의 정씨다. 최초의 정씨 정년은 장보고와 같은 고향사람으로 그 출신을 지금까지 완도로 알려져 왔으나 실은 흥해인이다. 두 사람은 신라 왕경인이라는 것이 전해져 오고 완도 출신 자료는 전혀 없다. 이는 신라 6부 역사와도 관련된다. 정씨의 시조는 본피부였으나 박씨, 김씨, 석씨 등 여러 왕족 세력에 밀린 정씨 부족은 신라 변두리인 흥해와 내남으로 밀려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강사가 저술한 소설 <전화앵>의 내용도 소개하면서 “훤달은 흥해 지역애서 약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서라벌을 침입한 후백제군과 싸운 용사였다. 특히 927년에 서라벌이 견훤군의 기습을 받아 경애왕이 죽고 비빈들이 겁탈되자 훤달은 울산 개지변의 윤웅 성주, 성주 이총언, 동래 정지원 등과 함께 약 5천명의 군사로 후백제군에 맞서서 위기의 신라를 구한 것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불세출의 흥해 인물 훤달을 한국의 대표 인물이자 세계 속의 대표 인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 하면서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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