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신일권기자]서울 전역에서 시세보다 호가를 낮춘 급전세 매물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5만916건으로 지난 2020년1월23일(5만1398건)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2020년10월5일(8313건)에 비해서는 6배 가량 많은 수준이다. 2020년 7월 임대차법 시행 이후 1만건 이하로 줄었던 전세 매물은 작년 상반기 2만건을 회복한 후 올해 상반기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해 최근 5만건 마저 넘어섰다.
14일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전세 매물은 많지만 워낙 찾는 사람이 없어 시세보다 가격을 내려서 내놔도 잘 나가지 않는 분위기"라며 "갱신계약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다 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전세 매물을 찾는 사람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 집주인들은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는데 전세가 나가지 않아 경쟁적으로 가격을 수천만원씩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시장에서는 갱신계약 확대와 고금리 여파로 신규 전세 수요가 줄어든 데다 주택시장의 거래절벽 현상이 심화하자 집주인들이 집 팔기를 포기하고 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매물이 급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이날 기준 노원구 월계동 한진한화그랑빌아파트 전세 매물은 85건으로 3개월 전 31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전세시장에서 가격을 시세보다 크게 내린 급매물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며 전세 가격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 전셋값은 작년 9월 6억8천만원까지 올랐지만 최근 호가 기준으로 4억3천만원까지 떨어졌다.도봉구 창동 북한산아이파크 전용면적 84㎡의 경우에도 작년 말 6억3천만원까지 올랐던 전세보증금이 최근 4억5천만원으로 하락했다. 이 단지 매물 역시 3달 전 20건에서 최근 54건으로 3배 가까이 크게 늘었다.노원구 월계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엔 세입자가 갑"이라며 "전세 매물이 많다보니 가격이 계속 내려가고 도배와 장판 등 수리를 해주겠다는 조건을 붙이는 집주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도봉구 창동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두 달 전만 해도 호가가 5억원 이상 이었는데 최근에는 3억원대 후반 매물까지 나와있다"며 "전세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는 집주인들이 초조해 하며 값이 계속 내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구 대치동 등 고가 아파트 단지의 경우 반값에 가깝게 큰 폭으로 내린 사례도 있다.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면적 84㎡는 올해 6월만 해도 해당 면적 전세 최고가가 22억원에 달했지만 최근 호가는 12억원 중반대까지 떨어졌다.관련 통계 자료를 통해서도 확연히 매수자 우위의 전세 시장이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1월 첫째주(7일 기준) 73.0을 기록했다. 이는 2019년 4월22일(72.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세수급지수는 기준선(100)보다 낮을수록 집을 구하려는 세입자보다 세를 놓으려는 집주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서울 전세시장은 대출이자 부담과 역전세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 월세 전환이 이어지면서 수요가 크게 둔화하고 있다"며 "전세매물 소진이 더디게 이뤄지는 대단지 위주로 가격 하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