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은 김부식이 쓴 삼국의 역사를 보유(補遺)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 전승되어 온 민담, 설화와 신라의 노래인 향가를 수집하고 그에 대한 고증을 위해 관공서의 각종 대장까지 뒤져가며 문헌을 찾아 그 역사적 의미를 밝히려 했다. 그때까지 전해오던 민간의 설화는 역사적 사실과 민간의 구전이 뒤섞여 한갓 이야기꺼리로 전해오던 것이었는데, 몽고의 침입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향찰식 표현에서 점차 한자표기 방식으로 변화해 가는 시대적 변천을 겪게 되었다. 즉 기존의 작품들이 우리말식의 토를 달아 표현함으로써 우리민족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나 이 시기에 이르러 한자문화가 확산되면서 순 한문식 작품으로 변질되어 갔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문학작품은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그 원형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었다.    일연은 이러한 시대적 변천을 인식하고 기존의 우리 문화에 녹아 있던 민담과 설화를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전승 보존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헌화가, 서동요, 원왕생가, 도솔가, 찬기파랑가 등 우리민족의 정서가 담긴 주옥같은 신라의 향가 25수 중 14수가 삼국유사에 실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연은 이들 설화가 한자문화로 흡수되어 소멸되기 전에 이를 보존하고자 하였는데 삼국유사 집필의 가장 큰 목적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일연의 민족문화 전승에 대한 각별한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또한 일연은 삼국유사를 집필함에 있어서 그 현장을 확인하러 전국을 직접 다니며 답사를 했고 전해오던 역사적 사실이나 설화를 놓고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사료를 찾아 대조 · 분석함으로써 실증적으로 이를 밝혀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즉 역사의 현장을 발로 뛰면서 그 당시까지 전해져 오던 이야기들을 문헌적으로 고증함으로써 살아 있는 역사를 쓴 것이다. 일연이 이곳 운문사에 주석할 당시의 나이가 70세가 넘은 시기였는데 이미 그 전부터 삼국유사 집필을 위해 수집해 두었던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며 편찬을 위한 기초 작업을 추진해 나갔을 것이다. 일연의 유사 편찬에 있어서 인용된 사료의 분량과 치밀하게 주석을 달았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저자 일연 이외에도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짐작 된다.    만약 일연이 그 당시 이러한 작업을 해두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많은 고유문화의 원형을 전해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인을 상대로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펼쳐 보이는 시대를 맞았다. 우리의 한류문화가 세계무대에 당당히 나서서 그 진가를 인정받는 밑바탕에는 고유한 민족문화의 창의성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독창적 문화는 일연이 우리민족을 위해 오래된 우리 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한민족의 정서를 우리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신라 향가 헌화가(獻花歌)에서 벼랑에 핀 아름다운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친 소 먹이는 노인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 문화를 찾아내고 정리하여 이를 후세대들에게 남겨준 보각국존 일연, 그는 벼랑에서 꽃을 꺾어 바친 바로 그 노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운문사를 돌아 나와 이어진 답사의 발길은 신원리의 갈림 길에서 언양방면으로 들어서서 신라시대 원광법사가 머물렀던 가슬갑사 유적지로 향했다. 운문5갑의 하나인 가슬갑사는 특히 화랑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원광과 가슬갑사에 대하여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운문사 사적기에 이를 기술하고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 의해(義解) 제5 「원광서학」조에는 ‘당속고승전 제13권에 실린 원광에 대한 이력을 인용하면서 “원광은 신라 황륭사 승려로서 속성은 박씨이며, 삼한 중 진한 사람이다.”라 적혀 있다. 또 ‘운문사 사적기’는 원광이 3년간 운문사에 주석하다가 이 후 가슬갑사에 우거하였으며, 가슬갑사의 위치는 운문사 동북쪽 9,000보(步)라고 적고 있다. 이 지점은 운문사에서 약 15리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오늘날의 문복산 자락의 개살피 계곡에 있는 ‘가슬갑사터’로 추정된다. 이곳 산중턱 비탈의 바위 아래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폐사지가 그 자리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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