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이 세상의 기억들을 그렸다 뭉갠다아직껏 짝을 찾지 못한 것이냐애매미의 구애는 한낮을 넘기고도 그칠 줄 모르네긴꼬리제비나비 노랑 상사화 꽃술을 더듬는다휘청~ 나비도 저렇게 무게가 있구나잠자리들 전기줄에 나란하다이제 저 일사불란도 불편하지 않다붉은머리오목눈이 한 떼가 꽃 덤불 속에 몰려오고봉숭아 꽃잎 후루루 울긋불긋 져 내린다하루해가 뉘엿거린다깜박깜박 별빛 만이 아니다어딘가 아주 멀리 두고 온 정신머리가 있을 것인데그래 바람이 왔구나 처마 끝 풍경 소리이쯤 되면 나는 관음으로 고요해져야 하는데귀 뚫어져라 귀뚜라미 뜰 앞에 개울물 소리가만있자 마음은 어디까지 흘러갔나<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내가 좋아하는 낱말, ‘관조(觀照)’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시다.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여 보거나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의 숨은 이치를 통찰해내는 일을 시로써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시인은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본다. 뭉게구름이 보인다. ‘기억들’이 뭉개지듯이 사라지는 것이 무심하다. ‘긴꼬리제비나비’를 본다. ‘노랑상사화 꽃술’이 휘청이는 것을 보고 그의 무게를 가늠한다. ‘잠자리’의 일사분란을,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무리 짓는 모습을, ‘봉숭아 꽃잎’이 지는 모양을 본다. ‘처마 끝 풍경 소리, 귀뚜라미 소리, 개울물 소리를 듣는다. 시인은 스쳐 가듯이 보고 들으며 그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둥글게 펼쳐보는 것이다.관조란 그런 것이다. 사물에서 이치(理致)를 보는 밝은 마음, 사물에서 통찰의 소리를 헤아리는 지혜의 귀를 열어두는 것이다. 우주의 섭리를 ’나‘라는 세계 안에 결집(結集)시키는 일인 것이다. 자신 안에 남아있는 수많은 기억들은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기도 하고 나를 약화시키는 방해꾼이기도 하다. 양날의 칼날인 셈이다. 나쁜 기억이 주는 억울과 피해의식과 불행을 ’관조‘라는 여과기에 거르는 일은 필요하다. 그 여과기에만 들어가면 불필요한 찌꺼기는 빠져나가고 반짝이는 마음의 본체만 남게 된다. 그리고 담담(淡淡)해진다. 고요의 등불이 켜지고 잔잔한 수면만이 남게 된다.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일이 차츰 쉬워진다. ’자신 밖의 나‘와 ’자신 안의 나‘를 바라보는 일도 불편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가만있자 마음은 어디까지 흘러갔나‘ 흘러간 마음을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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