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박동수기자]안동출신 수묵산수화의 대가 창산(蒼汕) 김대원(金大源) 화백의 누정 전시회가 오는 28일~10월 7일까지 안동문화예술의 전당 34, 35갤러리에서 열린다.    ‘영남의 누정,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란 제목으로 2022년 유네스코 추진 특별전 형식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는 경상북도와 한국국학진흥원 주최로 진행이 되는데 김대원 미술관이 보유한 200여 점의 실경산수화 가운데 영덕 침수정, 청송 방호정, 예천 초간정, 영주의 금선정, 안동의 만휴정 등 누정 100점이 전시된다. 창산 김대원은 평생 우리나라의 산수를 찾아다니며 붓으로 자연의 실경을 담아낸 화가다.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과 우수상, 제3회 월전미술상 수상과 더불어 35년간 경기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단체전 300여 회, 개인전 25회 연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 화가지만 고려대학교에서 한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력이 있을 만큼 실경산수 분야에서 이론과 실기를 완벽하게 갖춘 화가로 평가받는다. 중국역대화론(中國歷代畵論)(1-5권), 조선시대 그림이야기)(1-4권), 원림(園林)과 중국문화(中國文化)(1-4권), 중국고대화론유편(中國古代畵論類編)(1-16권)은 창산의 손을 거쳐 탄생한 번역서들이다.    창산이 고집스럽게 산수를 그리는 까닭은 본인만의 개성 넘치는 현대적 산수화를 추구하면서도 전통의 핵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2020년 봄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던 경기대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본격적으로 안동으로 귀향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경상북도 일대의 수많은 정자(亭子)를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올해 9월까지 완성한 정자 그림이 180여 점이다. 이번에 개최되는 특별전 `경북의 누정: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는 이 가운데 누정 100점을 고른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창산 김대원의 누정 작품들은 하나같이 그의 기량이 한 것 물올랐을 때의 작품이어서 창산 수묵산수화의 절정이라는 평가다. 창산은 눈앞에 정자와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풍광을 두고 수백 번 더 더하고 빼기를 반복하면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유려한 조형미는 물론 산수 풍광과 어울린 건물 주인의 정신까지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창산의 이러한 실험정신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이번 작품이 500호 대작 침수정이다. 영덕 옥계의 팔각산과 동대산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지점의 커다란 암반에 정면 2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으로 지은 침수정과 그 주위 풍광은 창산이 그전에도 여러 차례 그린 적이 있는데 2004년 작 침수정이 병풍대가 압권이었다면 2022년 작 침수정은 주위 풍광이 침수정을 빛나게 하는 보조 장치로 바뀌어 있다.    창산은 중국 화론이론서 번역 이후 산수의 경관을 그대로 묘사하기 보단 자연의 핵심을 포착하는 실경산수화로 전환했는데 이러한 실험은 이번 전시회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여실하게 다가온다. 청량산 그림은 김대원 연작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데 이번에 전시되는 고산정 또한, 실경을 통한 순수하고 빼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볼 수 있다. 2005년 작 청량산고산정이 고산정을 그림 한편의 점경으로 배치한 가운데 화폭의 중심을 커다란 절벽으로 채움으로써 청량산의 역동성을 보여줬다면 2022년에 그린고 산정은 흰 여백을 배경으로 정자를 도드라지게 표현한 덕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은 물론, 쌓아올린 석축까지 볼 수가 있다. 김대원은 이전 산수화에도 종종 정자나 고가(古家) 같은 건축물을 포함시켰다. 그의 산수화에서 기와집은 크기는 작아도 인간의 흔적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과 바위를 소우주처럼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섭리를 알려주는 산수화에서 작은 사람이나 집은 천지인(天地人) 합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산수화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림의 중심으로 기와집이 등장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그림이 될 법한 정자다. 화가의 눈으로 보아 그럴듯한 그림이 나와 주어야만 마음에 드는 정자인 것이지, 명승인가 보물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김대원은 눈에 보이는 모습에서 빼고 더하기를 반복하면서 가장 근사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사진으로 찍은 정자가 현실의 정자와 똑같다면, 그림 속의 정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예전의 정자는 그 속에 머물면서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정자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정자는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다. 과거의 정자는 휴식처이자 사람이 편하게 모이는 공간이며 가다 잠시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정자는 문화재이며 관광지이다. 더 이상 정자에서 한가한 삶을 음미하며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부를 하더라도 산골의 정자가 아니라 도회지의 근사한 카페에서 더 잘 되는 세상이다. 이점은 안동이라는 도시나 유교라는 사상이 처한 상황과도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오랜 전통을 현대와 접목시킬 수 있는가라는 동일한 화두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김대원은 그림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결합된 정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옛 사람들의 편안한 마음의 자취를 그림 속의 정자를 쳐다보면서 흐뭇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는 앞으로 구곡(九曲)을 그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선인들은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깊은 산 속에 정자를 짓고 성정을 다스리는 일에 몰두했다. 틈틈이 골짜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내어 구곡이라 이름 붙였다. 산수에서 정자로, 정자에서 다시 구곡으로 부지런히 그림을 그리러 다니는 김대원이야말로 자연을 벗하고 붓으로 노래하는 행복한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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