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스물네 해 전에, 어머니는금년 정초에 돌아가셨다, 정정하던 시골집 탓에한가위 귀성 행렬에도 해마다 끼었건만올해는 갈 곳조차 한갓져 하루 종일 뒹굴다가달맞이 산책길에 나선다, 달의 뒷면으로불뚝한 심사여, 조금 있으면 만월이 떠올라어머니와 함께 툇마루에 쌓던호박 달로 글썽거리리라생사야 장난처럼 단순해 무리도 벗었건만구름 달 여전히 내 속에 있고나 혼자 굴러오다 여기 서성거리니나는 몇 번이나 더 추석까지 저어 갈까?우수는 마음의 구름이니 달이여,한 가계가 나누던 쓸쓸한 사랑으로아뜩히 솟아올라 무너진 지붕 저쪽출가의 달로 헤매다오(어떤 달은 열아홉에 가출했고, 스물둘에 져버렸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부모님이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가족들은 형제자매간이 명절이라고 모여 앉아도 왠지 편치 않다. 일가친척 집 찾아가는 것도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가 좋지 무언지 모를 썰렁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부모 밑자락이 삼천리를 간다’는 말이 실감날 때가 어디 명절뿐이랴. 명절이 기쁘고 마냥 즐겁기만 했던 시절은 철없던 때 뿐이었을까.‘갈 곳조차 한갓져 하루 종일 뒹굴다가 달맞이 산책길에 나선다, 달의 뒷면으로 불뚝한 심사여’ 시인의 마음이 쓸쓸하다. 어머니 안 계신 한가위에 시인의 ‘불뚝한 심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이제 이틀 후면 한가위다. 시장에 나가보니 그래도 명절음식 장만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장은 이래서 좋다. 시름을 잊게 해준다. 흥정하는 소리들이 흥겹고 고객들 불러들이는 소리꾼들이 신난다. 언제 태풍이 왔다 갔는지도 잊게 한다. 그러니까 사는 거다. 이번 한가위는 달님이라도 아름드리 더 컸으면 좋겠다. ‘호박달’처럼 누렇게 잘 익고 더 환했으면 좋겠다.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