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일파만파 확대되면서 한나라당호(號)는 거센 폭풍 한복판에 떠있는 목선과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고승덕 의원이 검찰 조사에서 지난 2008년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전달한 측으로 현직 국회의장인 박희태 후보를 지목한 것으로 9일 알려지면서 의원들 사이에서는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불과 3개월 남겨놓은 총선 위기감이 가파르게 고조되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한나라당 해체 및 재창당` 주장이 급부상하고, 한동안 잠복했던 계파 갈등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줄소환 불가피..총선 위기감 증폭 = 한나라당을 패닉에 몰아넣은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고승덕 의원이 전날 진술을 토대로 검찰 수사는 본격화할 전망이며, 당사자로 지목된 박희태 국회의장에 대한 조사는 물론 이번 사건에 직ㆍ간접적으로 연루된 당 인사들의 줄소환은 불가피해 보인다. 고 의원이 받았다는 `돈 봉투 300만원`에 대해서만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전당대회 돈 선거` 의혹 전반에 대해 검찰의 칼날이 향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관측이다. 지난 2008년 전대 당시 박희태 후보 측 인사가 서울지역 30개 당협 사무국장에게 50만원씩 돌리도록 지시했다는 설이 있고, 300만원 돈 봉투를 비단 고 의원만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적지 않다. 우선 박희태 후보를 친이(친이명박)계가 집중 지원했다는 점에서 친이계를 대상으로 조사가 예상된다. 동시에 검찰 수사는 2008년뿐 아니라 2008년 비례대표 공천과 2010년 전당대회에도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 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와 조전혁 의원이 각각 "비례대표 공천도 돈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2010년 전대에서 1천만원 돈 봉투를 뿌린 후보도 있었다고 한다"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 검찰은 이에 대한 수사 의뢰 여부를 한나라당에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루머`를 토대로 수사 의뢰를 하는 게 맞지 않다는 게 한나라당의 판단이나, 검찰로서는 수사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한나라당 `돈 선거 관행` 전체가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로서는 총선 대열을 정비하는 대신 `돈 선거`의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총선 치르기 더 힘들어졌다"며 "인터넷 공간에서 그렇지 않아도 부패한 당으로 인식돼 있는데 더욱 썩은 당이 됐다"고 꼬집었다. 다른 서울지역 의원은 "수도권 의원들은 패닉 상태"로 "이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당의 진로와 수습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계파갈등 ‘도화선` 되나 = 지난 2008년 전대에서 박희태 후보가 친이계 지원으로 당 대표에 올랐다는 점에서 친이계 전체가 곤경에 처한 모양새다. 박 후보 측이 친이계인 고승덕 의원에게 3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는 점에서 다른 친이계 의원들도 돈을 받았을 개연성이 있고, 역으로 일부 친이 인사가 돈 봉투를 돌렸다는 추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부 비대위원 중심으로 제기된 `MB정부 핵심 용퇴론`과 맞물려 친이계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고강도 인적 쇄신을 예고한 `박근혜 비대위`가 첫 쇄신 대상으로 친이계를 지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이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친이계 내부에서는 `친이 전체를 도매금으로 넘기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고, 집단행동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 수도권 친이계 의원은 "돈 봉투를 친이계 전체 문제로 몰아가는 분위기인데, 말도 안 된다"며 "누구든 이번 사건을 친이계의 문제로 몰고 갈 경우 우리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영남권 친이계 의원은 "친이계의 줄소환이 아닐 수도 있다"며 "친이계가 친이 후보를 지원한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오히려 계파의 경계선에 있던 사람들에게 거래 제의가 가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범친이계이자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잠재적 경쟁자인 정몽준ㆍ홍준표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가 전날 전격 회동, `특정 세력의 독주` 가능성을 거론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들은 회동에서 "한 세력ㆍ계파가 독점적으로 당을 지배ㆍ운영하면서 경쟁세력을 몰아내고 가지치기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친이계가 `정몽준-홍준표-김문수 연대`를 중심으로 재규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렇게 될 경우 `박근혜 비대위`와의 정면 충돌도 불거질 수 있다.  ◇재창당 불가피론 확산 = 고 의원이 폭로한 돈봉투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재창당론이 쇄신파와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친박 일각에서도 동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떼기 정당`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간판으로는 4ㆍ11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쇄신파 의원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데 이제는 한나라당을 해체하고 재창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쇄신파 의원은 "이름ㆍ운영시스템ㆍ문화ㆍ정책 모든 것을 다 바꾸는 재창당이 불가피하다"고 거들었다. 친박 구상찬 의원도 "서울과 수도권은 패닉 상태"라며 "이대로는 안 된다. 친이ㆍ친박을 떠나 재창당에 동감하는 의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친이계 한 의원은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에 대해 국민은 즉각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일으킨다"며 "당명을 바꾸고 실질적인 내용도 바꿔 당이 합리적이고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야 국민에게 다시 한 번 지지를 호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비대위` 출범 전 재창당을 요구했던 의원들 중 일부는 이날 회동을 갖고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의총 소집을 요구할 계획이다. 서울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지금은 지역구에서 개별 의원이 뛰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의총을 열게 되면 비대위원 몇 명 사퇴를 놓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재창당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쇄신파 일각에선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책임을 청와대로 몰고 갔다. 한 쇄신파 의원은 "청와대가 인기가 없지만 편한 사람으로 무리하게 당 대표를 시키려다 보니 조직적인 돈 선거로 갔다"며 "청와대가 돈을 쓴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 책임론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재창당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신당에 입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탈당하는 `MB 단절론`과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비대위` 돈봉투 대책은 = 전대 돈봉투 문제는 박근혜 비대위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박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디도스 사건에 이어 돈봉투 의혹까지 제기돼 다시한번 국민들께 실망을 안겨 드리고 있다"면서 "구태 정치, 그리고 과거의 잘못된 정치 관행과 단절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환부`를 과감이 도려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일단 돈봉투 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부터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쇄신파 의원들뿐 아니라 일부 비대위원들조차 대국민사과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 역시 대국민사과와 돈봉투 추가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의뢰 등 위기대응 방안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 지도부 내에선 대국민사과에 대해 아직 신중론이 우세한 편이다. 권영세 사무총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은 사과가 아니라 검찰 수사에 전폭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도 "지금으로서는 당에서 조치를 취할 것이 없다"며 "박 의장 관련 여부도 확인된 것은 아직 없지 않느냐"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비대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적쇄신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검찰은 수사를 신속하게 해주기를 바라며, 검찰이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지고 소환하는 사람은 공천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재창당을 한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찬반양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수도권 한 친박 의원은 "이런 상황으로 가면 총선은 이미 끝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의정보고회를 하기도 어렵고 결혼식도 가기 두려운 상황"이라며 "정강ㆍ정책이나 당명을 바꾸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박 비대위원장은 재창당론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비대위원장이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을 이뤄내 국민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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