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교복에 학교 마크가 찍힌 노란 금속 단추, 책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학교가는 길에 어느 전파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 흑백TV에서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아주 아름답고 밝은 모습의 누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주 예쁜 얼굴에 밝은 표정과 미소 발랄한 모습의 <올리비아 뉴턴 죤>이었다. 당시 대 유행을 했던 곡 ‘그대 곁에 있게 해주오’ 를 부르고 있다. 마치 아이스크림과 캔디를 먹는 듯 달콤하고 듣기 쉬운, 이지 리스닝 계열의 <슈가 팝>이라고 불리는 노래였다.“그대 어딜 가더라도 당신의 삶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을 때도 내가 언제나 함께 있다는 것을 꼭 알아두세요. 당신 손을 잡을께요. 그대가 쓰러질 때 잡아줄 수 있도록 곁에 서 있을께요. 당신이 하는 일들을 모두 챙겨보면서 말이에요. 아침에도, 내가 그대 곁에 있도록 해주세요. 저녁에도 내가 그대 곁에 있도록 해주세요. 잘못된 건 무엇이든 바꾸어 바로 잡게 해 주세요. 단 둘만 함께 나눌 수 있는 동화의 나라로 그대를 데려가게 해줘요. 내가 원하는 건 그대 곁에 있는 것 뿐.”지금 들어도 너무나 달콤하고 감미로운 음율에 가삿말을 다시 읽어보니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내용들로 무척이나 아름답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며 통기타와 생맥주, 청바지와 젊음을 이야기할 때 늘 올리비아 뉴턴 죤은 우리와 함께 했다. 오늘 아침에 그녀의 부고를 들었고 출근 준비를 하던 중 깜짝 놀랐다. 허겁지겁 차를 몰아 출근 길에 그녀를 생각하며 그 음악을 찾아 들으며 알 수 없게도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한 동안을 그렇게 가슴 먹먹한 한숨을 쉬며 를 듣고 또 들었다.80년 대학가에서는 음악다방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그 음악 다방에서 청춘스타인 올리비아 뉴턴 죤의 미모와 음악성, 달콤함과 흥겨움을 그냥 둘리 없었다. 신청곡에는 의례 올리비아의 노래가 늘 선곡지의 상단에 가장 많이 위치했었고 특히 당시 존 트라볼트와 함께 출연한 영화 그리스(Grease)에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과 ‘섬머 나잇’이라는 곡은 인기 만점이었다. 길거리 레코드 가게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시내의 군중 속에서도, 그 인파가 몰려나오는 거리에서도 우리들의 히로인 올리비아의 노래는 늘 울려 퍼져 나오고 있었다.
갓 대학을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올리비아 뉴턴 죤은 그야말로 책받침 여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밝고 예쁜 외모에 청바지를 입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 우리는 너무나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까까머리 시절부터 우리들의 여신이었고, 우리들의 연인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는 금발의 커다란 눈에 뚜렷한 이목구비, 빨갛고 그렇지만 항상 빛나던 그녀의 입술은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나이도 들지 않고 늙지 않으며 그 밝음과 감미로운 목소리는 귓 전에 남아있어 지나다 한 소절만 스쳐도 그 시절과 페어링이 되어 추억을 소환한다.올리비아 뉴턴 죤이 현지시간 8일 오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 30년 간 유방암으로 투병을 하며 캘리포니아 목장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고 전했다. 올리비아는 1992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2018년 가을 자신의 세 번째 척추 암 투병사실도 공개했다. 그에 10년 앞선 2008년에는 기금을 조성해 올리비아 뉴튼 존 암센터를 설립하고 암연구와 환자들을 지원해 왔다. 그녀는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 갚으며 살아오며 그녀가 왜 ‘만인의 연인’이라 불리는지 이유를 행동으로 설명했다.그녀가 50대 중 후반 쯤, 어떤 한국인을 깊게 사랑하기도 했다. <패트릭 김>이라는 이름의 한국계 이민자로 TV 광고 촬영 차 LA를 방문했다가 카메라 맨인 김씨를 만나 9년 동안 연인관계로 지냈다. 안타깝게도 <페트릭 김>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중 실종이 되었고 그로부터 그 후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매스컴에도 나와서 그녀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김씨의 실종에 충격을 받아 울먹대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나의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하는 친구가 안전하길 바라며 제발, 페트릭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기대한다’고....그녀의 최근 얼굴을 볼 수도 없고 큰 관심도 없었다. 그녀가 보고 싶으면 여러 채널에서 재기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감미로운 목소리의 젊은 그녀가 영상에 나온다. 최근에 그녀를 만난 건 ‘빗속에서 울고 있는 슬픈 눈동자’ 였으니 얼마나 그녀와 떨어져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처럼 반복하는 삶의 여정에서 그녀가 부른 슬픈 눈동자의 가사는 가슴에 와 닿았다. ‘사랑은 죽어가는 불씨와 같고, 그저 추억 만이 남아 있어요.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에서 만나면 그때 다시 손잡고 걷고 있겠죠.’그녀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고, 그녀와 함께 동시대를 지내온 많은 사람들도 떠나가고 있다. 오늘 아침 올리비아 뉴턴 죤의 소식에 눈물 짓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들, 모두 우리의 추억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한 시대를 함께 한 분들. 긴 인생 여정을 살아오며 지금 모두들 어디에 사는지, 누구인지, 이름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 같은 음악, 같은 순간, 같은 정서,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 온 사람들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고마운 우리 시대가 저물고 그 사람들과 멀어지는 서러움의 공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