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최영열기자] 40년 농협맨으로 살아가고 있는 구미농협 김영태 조합장을 만났다. 짧은 시간 만남이었지만 반짝이는 눈과 날카로운 눈매, 꽉 다문 입술은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고, 설명을 위해 한마디 한마디 쏟아내는 그의 말엔 분명한 소신과 규정(원칙) 준수의 의지가 강하게 배어 나왔다.농고와 농대를 졸업 후 농협(農協)에 입사, 40년을 한결같이 오직 한 길, 농협 발전을 위해 청춘을 다 바쳐 온 진정한 농협맨 김영태 조합장의 지난 그의 행적은 농협은행 업계(業界)의 진정한 장인(匠人)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부와 명예를 거머쥘 손쉬운 기회도 적지 않았지만 이를 모두 마다하고 진정한 농협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 온 그는 자나 깨나 오직 농협의 발전만을 고민해 왔고, 후임에게도 전혀 부끄럽지 않도록 직무 수행에 만전을 기해 왔기에 바보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란 주위의 비아냥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농협 조합장 재선을 이룬 지금까지 자식 둘을 공부시킨 것과 현재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단독주택 하나가 그에게 남겨진 전 재산임을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그런 그가 보람과 긍지로 삼는 것이 바로 ‘드높아진 구미농협의 현재의 위상’과 ‘지금껏 이뤄놓은 성과물들’이며,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따라서 ‘지난 40여 년 아무나 갈 수 없는 그 길을 간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하며, 그 길에 묵묵히 함께 해준 동료들과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금할 길 없음도 표했다.‘강한 것은 쉬이 부러진다’고 하듯 오랜 기간 농협맨으로서의 외길 인생을 성실히 살아온 것을 볼 때 강해 보이는 그의 이면에 또 다른 무언가가 삶에 큰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강한 외면과 달리 인간적이고 정적인 요소가 그의 내면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정(情)이 느껴지는 농협 분위기를 추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 그가 먼저 직원 섬기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농협을 찾는 손님들을 대하는 일에도 정감(情感)이 느껴지도록 응대해 줄 것을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일례(一例)로 농협문을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들어오는 손님이든,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채 들어서는 손님이든, 외모가 아닌 인간 존중의 마음을 품고 손님들을 진정으로 대해 달라고 철저히 교육했다.이러한 노력의 결과, 민원(民怨)이 대폭 줄어들었고 직원들도 좀 더 밝은 직장 분위기 속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정(情)이 흐르는 조직’ 그가 과거 농협 입문 초기부터 맘속으로 추구해 왔던 바였고, 조합장이 되면서 하나둘씩 그 꿈들을 현실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열혈 농업맨으로 거듭나기김 조합장은 1971년도 농림고 입학을 시작으로 농업에 입문했고, 이후 농대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농업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1982년 농협 입사 이후, 총무계 업무를 통해 농협의 전반적 업무와 협력 기관들과의 관계를 익힐 수 있었고, 특히 조합장 일정을 관리하면서 자나 깨나 농협만을 생각하는 농협맨으로 변신하게 됐다고 밝혔다.그의 농협맨으로서의 직무 수행 중 가장 잊을 수도 없고 큰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됐던 업무로는 구미농협이 파머스마켓을 유치한 일이다. 농협 내부의 우려와 구미 유통업계의 위해(危害)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이겨내고 얻어낸 성과였다.농대 재학 중, 농협의 주 업무가 그 당시 담당하고 있는 ‘금융사업’ 만이 아닌 ‘지도사업’(조합원들의 권익 보호)과 ‘경제사업’(농산물 공동출하와 영농자재 염가 공급 등)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지난 2000년 구미농협 기획상무로 재직 중 파머스마켓 유치를 적극 주장하게 된 것이다.농협이 그간 조합원과 구미시민의 은혜에 보답하고 계속해서 사랑받는 길은 ‘품질 좋은 농산물을 값싸게 공급하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파머스마켓이 전국에 확산되기 전인지라 손실에 대한 우려로 인해 내부적인 반발이 계속됐지만 조합에 손실을 끼칠 시 사직서 제출을 약속하고 사업을 강력히 추진했다.사직을 담보로 시작한 파머스마켓이었기에 초대 점장으로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업 성공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이후 사업은 대박이 났고 경북도내 1호점이자 전국 4호점의 눈부신 성과를 배우기 위해 전국 농협 관계자들이 몰려오기도 했다.구미농협 파머스마켓은 박리다매라는 사업철학에 따라 농산물은 물론 공산품까지 유통시켰기 때문에 지역 물가안정을 도모함은 물론 판매 수익의 증가로 구미농협의 실적을 향상시키는데도 크게 일조했다.김 조합장은 파머스마켓 점장직을 8여년을 수행 후 지점장 등 요직을 거쳐 퇴직했고, 이후 구미농협 조합장 선거에 출마, 압도적인 지지 64%를 받아 당선됐다.농협은 농지를 기반으로 한 조직체이며, 지역을 연고로 하는 조합원들의 구성체이므로 지연과 학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조직체이다. 따라서 전국을 두루 살펴봐도 타지 출신 조합장은 단 몇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경북도내의 경우, 김영태 조합장이 유일한 사례이며, 대구시의 경우도 동대구농협과 북대구농협 단 2곳만이 타지 출신 조합장이 재임(在任) 중에 있다.김 조합장이 현재 구미에 거주한지는 42년째다. 첫 조합장 당선 시인 지난 2015년은 구미 거주 35년째였지만 조합원들이 구미 출신 후보자를 마다하고 김 조합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의 업무 능력과 청렴성을 인정해 준 것이다.현재 구미농협의 실적은 전국에서 50위권 안에 들어가는 조합으로 우뚝 세워진 상태며, 상호금융대상 4회, 윤리경영 대상과 구미상공대상 등 중앙과 지역에서 연이어 거두고 있는 각종 대내외 최고상 수상들이 활력이 넘치는 구미농협의 경영 상황을 증명해 주고 있다.각종 예수금이 지난 2015년 경북 도내 157개 농협 가운데 4번째였는데 2022년 현재는 2번째 순위로 올려놓았다. 포항농협과 김천농협보다도 높은 순위다.조합경영과 관련 어려웠던 점은 조합원 정비에 있었다. 조합장 취임 직 후 조합원 실태 조사를 벌이니 조합원 자격 없는 이들이 200~300명 선에 달했다. 조합장 취임 1년만인 지난 2016년 철저한 검증을 거쳐 180여 명에게 조합원 자격 박탈시켰더니 난리가 났다. 엄청난 저항 받았다. “조합장 시켜놨더니 조합원 탈퇴나 시켰다”며 원성이 얼마나 돌아오는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중앙회 지시사항이고 기본 조합원 자격 기준 준수였기에 과감하게 일을 추진해 나갔다.이후 1년에 한번씩 실태조사 해서 무자격 조합원을 완벽 정리하니, 중앙회에서도 놀랄 정도로 조합 전체가 조합원 자격을 갖춘 상태로 전환이 이뤄졌다.직무 감사와 관련, 감사들에게는 “모든 것을 원칙에 입각해서 해라 규정대로 해라 규정을 벗어나면 악 순환이 계속된다”며 엄격하고 철저한 감사 기준을 강조, 일상을 통한 쇄신이 이뤄지도록 촉구하고 있다.조합장 직무 수행 중 ‘아쉽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에 대해 김 조합장은, “‘늘 정직하고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시던 아버지께서 조합장 된 것을 못보고 돌아가셨다. 살아계셨으면 너무나 좋아하셨을 것이고 내가 매일 업고 다녔을 것인데 너무 죄송스럽고 아쉽다”라며 어려운 시대, 농부로서 한 평생을 사셨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