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읽다 말았는가달동네 끝자락 공터 기우뚱한 벤치 위표지 귀퉁이도 나달나달한 시집 한 권시심 깊은 바람이 몇 쪽 읽어 넘기고 있다어느 감명 깊은 문장인가한참을 읽다 책장을 도로 넘긴다복사라도 하는지 가을 햇살 한 줌깨알 위로 쏟아진다벤치 뒤 삽상한 바람에 나붓대는 키 큰 코스모스 몇 송이마냥 시흥에 겨워분홍 입술 달삭달삭 시 몇 편 외고 있다.등받이 상단에 앉은 고추 잠자리눈알 떼굴떼굴 묵독에 열중하는 햇살 두툼한 가을날 오후 몇 페이지<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어느 가을 날 ‘달동네 끝자락 공터 기우뚱한 벤치 위’에 낡은 시집 한 권이 보인다.벤치에서 바람이 책장을 넘기고 있고 ‘키 큰 코스모스 몇 송이’가 ‘분홍 입술 달삭달삭 시 몇 편 외고’ 있는 풍경이 마치 도서관의 ‘자유 열람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일처럼 비춰진 것이다. ‘시심 깊은 바람’이 시를 읽다가 다시 파라락~ 책장을 되돌리는 모양새를 보고 ‘감명 깊은 문장’이어서 ‘책장을 도로 넘긴다’는 해석이 무릎을 치게 한다. 거기다가 ‘가을 햇살 한 줌’이 ‘깨알 위로 쏟아’ 지는 현상을 ‘복사’하는 행위로 표현한 것은 시인의 기량이 뛰어남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절로 박수가 쳐진다. 가난한 달동네 벤치에서 시인은 누군가의 시집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시인은 본인의 낡은 시를 읽으면서 한 편의 참신한 시를 낚아 올렸으리라. 시 읽기 편안한 ‘햇살 두툼한 가을날 오후’ 시인은 ‘묵독에 열중하는’ 고추 잠자리가 되어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창공을 날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편안한 풍경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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