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그동안 사회를 합리적으로 개혁한다는 이름 아래 저소득 계층의 노동임금을 인상하고, 조세를 감면하고, 복지정책을 늘리는 등의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이 우선시 해왔다. 중산층 또한 당연히 혜택을 원하기에 손해 보지 않는 포퓰리즘을 묵인하며 따르게 된 것이다. 이는 국고의 재정 압박으로 이어지고,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가져다준다.포퓰리즘(populism)이란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를 말하며 종종 소수 집권세력이 권력유지를 위하여 다수의 대중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포퓰리즘은 다수의 빈민과 서민층의 인기를 얻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던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가 대표적인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페론의 포퓰리즘 때문에 나라가 도산에 빠졌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우리에게 포퓰리즘은 혐오스러운 정치용어가 되었다. 현실에서 포퓰리스트(대중 인기 영합주의자)라는 낙인은 공산주의자라는 색깔을 덧씌우는 것만큼이나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현대 민주주의는 근대에 형성된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근대 초기에 불충분했던 여론 매체와 국민 참여 수단이 개발되고 발전함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해왔다. 여론에 의한 정치나 참여 민주주의라는 말은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산업 사회화로 형성된 대중의 정치 참여 확대를 지칭하는 대중 민주주의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대표격인 의회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대표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 대중의 지지란 곧 대중의 인기와 다를 바가 없다.여기서 우리는 대중의 인기를 얻는 행위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것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정치인과 지도자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만 그 지위를 얻기 때문이다.포퓰리즘을 불건전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그저 당면한 인기에 급급해 국가의 미래적 비전인 건전한 정책은 뒤로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대중을 우매하게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영리를 취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견해가 사실이라면 그 말은 백 번 들어도 옳다. 따라서 당연히 우리는 그런 포퓰리스트를 국민의 대표자로 뽑아서는 안 될 것이다.그런데 누가 포퓰리스트이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포퓰리즘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 도달하면 포퓰리즘의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색깔 논쟁만큼이나 사람들의 판단을 오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이고 객관적 검증 없이 어느 한쪽을 포퓰리즘으로 낙인찍는 것은 잘못된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고질인 이분법적 흑백논리의 악습을 반복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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