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이다. 그곳은 노씨의 집성촌(集姓村)으로 지금도 마을 전체의 90%가 盧家들이 살고있다. 노씨 집안에 시집 온 분들 중에는 택호(宅號)가 삼강아지매도 있고 금당실아지매도 있다. 택호는 친정집 고을이름으로 정해지며 우리마을 인근에는 옛 5일장이 가장 융성했던 구담(九潭)장이 나오는데 어릴때 십리길인 구담장이 멀었지만 장사꾼들의 외치는 소리들...장날은 그동안 보고싶었던 친구 친척 지인들의 만남의 장이었으며 늘 흥청거리는 분위기였다.그곳은 각종 곡식들을 이고온 할머니, 온갖 잡화들과 펑튀기, 불을짚혀 고무신 때우는곳, 工具의 산실인 대장간, 넙적한 대나무펜으로 용(龍)과 조류(鳥類) 등을 여러가지 색을 찍어 단숨에 그리는 민화풍(民畵風)의 그림글자, 물건파는 간이 써커스단의 묘기, 포장으로 둘러진 멍석을 깔아놓은 장작불에 끓는 가마솥국밥, 즉석 잔치국수, 도부상(장똘뱅이-각 지역 장날만 찾아 다니는 장사꾼)들이 가지고 온, 없는게 없는 萬物商人들의 외침과 雜貨들...그곳은 어린 나에게는 볼거리 많은 호기심 천국이었다.지금 생각하면 어린시절 방학때면 고향의 큰집을 찾았고, 큰어머니를 따라 장에갔었던 어릴때의 추억들이 생각나 지금도 고향엘 갈 땐 이따금 구담을 통하여 옛 추억들을 되새기곤 한다. 이 곳 구담은 河回에서 돌아나온 낙동강 源流가 흐르고 강을 따라 넓은 곡창지대를 조금 내려가면 豊壤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읍에서 回龍浦를 지나 내려오는 내성천과 멀리 문경 주흘산에서 오는 금천이 만나는 곳이 삼강(三江)인데, 세 물줄기가 합쳐진다 해서 동네 이름이 三江里라 불리는 강가 나루터에는 무심히 흐르는 강물과, 아픈 세월, 민초들의 哀歡을 지켜온 마지막 주막인 "三江酒幕"이 있다.말만 나루터지 이미 배가 없어진지 오래이며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주변에 큰길이 나면서 나루터에 사람의 내왕이 크게 줄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이곳의 사람들은 경운기를 타고 멀리 좋은길을 찾아 돌아갔다.70년대만 해도 이곳에 세채의 주막이 있었으나 시대에 밀려 주막은 하나 둘 사라지고, 이제 낙동강 700리에 유일하게 남은것이 삼강주막이다.더구나 지난 2004년 삼강교의 다리가 세워져 뚫리고 평생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봉당마루에 앉아 쓸쓸히 눈물을 훔치셨다고 한다. 할머니를 슬프게 한 것은 다리의 준공이 아니라 이곳을 찾을 사람이 없어지는 허무함의 눈물이었으리라...! 다리 밑 흙집...50년 동안 이 주막을 지켜온 유옥연(당시88)할머니는 요즘 세상이면 어리광이나 부릴 열 여섯의 나이에 은비녀 한 개 받고 어쩔 수 없어 찢어지듯 가난한 집으로 시집온 할머니...설상가상 푸르디 푸른 여자나이 서른 넷에 이름도 모르는 병으로 남편을 잃은 그녀에게 남은 것은 가혹한 굶주림의 올망졸망한 2남3녀가 전부였다.그녀는 자식과 함께 살아남을려고 나루터에서 주막을 시작했고 강물 따라 남편없이 흘러가 버린 세월이 어언 50여년. 이제 코흘리개 큰아들은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란다.70년대만 해도 주막은 호황이었다. 장날이면 소를 6마리나 실을 수 있는 큰배가 하루에도 20∼30번을 오갔고 점심때 술독이 빌 정도였단다. 강을 건너가는 사람들, 또 강을 건너온 사람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위안이었을 것이다.장을 따라 강을 건너는 장사치들에게는 오늘 장사의 성패에 대한 불안이 있었을 것이며 강 건너 자갈섞인 밭에서 하루종일 뙤약볕을 쐬며 김을 매다온 농군들에게는 시원한 막걸리와 하루의 수고를 달래주는 토닥거림이 필요했을 것이다.그렇게 사람들이 찾아와 푸념을 털어놓고 가버리면 외로움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할머니는 담배를 하루에 한 갑이 모자란단다. 무심한 하늘과 친해지고 싶어 담배연기로 구름을 만들어 하늘로 보내기 50여년...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 지나치고, 내가 만날 때도 줄담배를 피우시며, "젊을 때는 참 인생이 길다고 생각했어...! 너무도 힘이 들어 빨리 늙고 싶었지..." 하지만 88년을 살아온 이제와 생각하니 인생이란 참으로 잠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눈 한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어느듯 흘러간 88년의 세월이란다.2004년 유난히도 춥던 겨울, 할머니를 통해 많은것을 느끼며, 激動期를 맞아 고난속 여자의 일생을 머리속에 간직하며 나는 지갑에서 성의를 표현하며 담배를 줄이고 건강히 오래 사시라고 한 말이 그분에게 드린 나의 마지막 표현이었다. 만나고 떠나온지 몇달 후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한해가 지난 후 접하고 애잔한 마음과 함께 눈시울의 뜨거움을 느끼며, 山川은 依舊한데 人傑은 간데없구나~안개비가 내리는 오늘 근 20년의 세월이 흐른 그때를 그리움과 함께 회상해본다. -靑松愚民 松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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