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이 곳에서 마시는 게 아니고, 저 쪽으로 가서 서서 먹어야 한데요.” 그래도 모처럼 부자는 활짝 웃으며 일본에서의 여름 밤 아름다운 사연으로 귀결되었다. 칼럼을 시작하면서 자식과의 함께하는 여행을 <아주 위험한 여행>으로 이름 붙였다.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의 다정하고 훈훈한 여행일기로 그려질 줄만 알았던 여행이 집 안에서와 달리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맞았기 때문이다. 칼럼이 본의 아니게 자식과 여행을 떠난 이야기로 전개가 된 점은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시는 소시민들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부모가 단 둘이서 장거리 여행을 떠나며 겪은 갈등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부자간의 정을 이야기로 남기고 싶었고, 또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이미 5일 간의 국내여행과 일주일 간의 인도여행을 통해, 비록 자식이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느꼈다. 국내 여행에서 아버지의 계획을 반 강제적으로 아들에게 강요했고, 인도여행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작은 소망을 외면하는 듯 하여 갈등이 생겼고 여행이 내내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어른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무엇하나라도 교훈적인 것을 찾아 여행하고, 유적지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이입장에서는 괴롭기 짝이 없을 수도 있었다. 왜 교육적이어야만 했고 교훈을 얻는 여행을 고집했을까? 그저 아들과 함께 맛나는 것을 먹으며 아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유적지에서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그렇게 되새겨야 했을까?사람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아버지와 아들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른이라고 반드시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에서의 난장판같은 상황에서 아들에게 기대어 도움을 받고 싶었던 아버지의 소망이 아들이 겪은 서운함과 비견되었으리라. 마일리지가 얼마 후 소멸된다는 통보에 최대한 갈 수 있는 아시아권을 찾다 일본 북해도를 찾았다. 아들 비행권은 추가로 구매하였고 그렇게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을 했다. 지난 번 업무 차 한 번 들렀기에 조금은 능숙하게 여행 스케쥴을 짰고, 업무로 채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계획에 넣었다. 그러나 일본 역시, 여행을 하며 모르는 곳이 대부분이고 그 상황에서 함께 한 부자는 응대의 방식이 달라 초반에 삐긋대었다.영화 <러브레터>의 도시인 오타루도 가보았고, 그 곳 시장에서 털게를 보고 군침을 흘렸으나 현금만 받는다고 하여 아쉽게 돌아왔다. 여러 유적지도 돌아보며 일본인의 친절함과 미소 등 장점은 우리가 배우자라는 등의 말은 절대 입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찾은 맛집에 가서 소바 면을 먹어주며 맛있는 곳을 잘도 찾았다는 칭찬만 해 줄 뿐. 삿포로에 돌아와서도 아이가 원하는 식당에 가서 다소 푸짐하게 먹거리를 즐기기만 했다. 어쨌든 항공권 하나가 공짜로 왔으니 총액 기준은 그럭저럭 감당할 만 했다. 조금 걸었으면 좋겠는데, 걷기를 싫어하며 택시를 부르는 바람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다 급히 관두었다. 이미 교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이가 드디어 제 아버지를 염려하고 챙기기 시작했다.인도보다 더 작은 비즈니스 호텔인데도 아무런 불평도 없었고, 제 아버지가 서툴러 뭔가를 실수해도 그냥 지켜보며 슬며시 해결한다. 무엇을 먹자해도 그러려니 따랐고, 물건을 사기라도 하면 아들은 이내 그 짐을 빼앗아 들었다. 우리가 언제 진솔하게 대화를 장시간 나눈 적이 있었던가, 삿포로 시내에서 털게를 먹게 되었다. 다소 가격이 비쌌지만 그냥 먹기로 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더니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식사 후 근처 오도리 공원에서 벌어지는 맥주 페스티벌에 가서 함께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무슨 절차가 있는지 빈자리가 많아도 앉지않고 서서 맥주들을 마신다. 2잔의 생맥주를 시켜서 테이블에 앉아 먹는데, 아들이 다가와서 말한다. “맥주는 이 곳에서 마시는 게 아니고, 저 쪽으로 가서 서서 먹어야 한데요.”각자의 부스가 있고, 또 반드시 안주를 시켜야만 비치 파라솔 같은 프라스틱 의자에 앉을 수 있다고 했다. 감자튀김 안주 하나를 시켜서 자리에 앉았는데,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우물쭈물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았다. 감자튀김 하나로는 안되는 모양이다. 생맥주를 파는 공원이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서서 먹으려다 소세지 한 접시를 더 사니 감사하다며 사라진다. 그날 공원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였고, 우리 부자는 생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처음인 것처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의 인생 계획과 취업 준비 상황, 하고 싶은 일,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마음과 함께 떠나 준 여행에 대한 감사의 이야기도 전했다. 드디어 성공이다. 아름다운 여름 밤, 아들과의 대화를 마친 아버지를 부축하는 아들을 본다.아들도 국내여행과 인도여행에서 긴시간 동안 불편했던 시간들을 기억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 있었고, 아들 역시 배운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배려>였다. 자기의 뜻대로 요구하지 않고 상대에게 베푸는 따스한 마음씨. 아버지도 아들에게 배웠다. 근엄하고 무엇이라도 가르치는 대신 아이의 입장을 묵묵히 살피고 원하는 것을 지켜 봐 주고 응원하는 것, 그것 역시 <배려>였다. 부자는 그간 지구 반바퀴를 돌고 돌아 그 <배려>를 찾아 귀가하며 위험한 여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