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아이와 함께 국내여행을 한 대참사 이후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 자식와의 전국일주 여행이 처참히 무너지고 나서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아이와 부자간의 돈독한 정을 쌓고 싶었기에 지난번의 실패를 교훈삼아 또 다시 한 번 더 기회가 왔으면 하고 기대했다. 그 기회가 다시 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에게 다가가서 아버지랑 같이 한 번 더 여행을 하는 것이 어떤지 넌지시 물었더니 취업준비 탓으로 함께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려니 하고 말을 건넸다. “이번에는 국내가 아니고 인도 여행인데? 인도 여행은 한 번 쯤은 해보는 것이 좋다는데 아버지가 발표 가는데 같이 동행하는 것이 어떠니? 먼 길 가는데 네가 좀 도와도 주고.” 한국에서 교환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쿠마란 박사가 귀국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학교 행사 중에 한국의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에서 생활한 자신이 강연하기보다 한국인 교수가 오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응했고 다만 조건이 아이와 동행을 하려고 하니 그저 깨끗한 방 한 칸의 추가 숙소를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떠나게 된 인도 여행길.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우선 시내로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일부러 먼저 3일 정도의 여행을 하고 다시 남부 지역의 대학에 가려고 계획했다. 날씨는 찌듯이 더웠고 인파의 홍수 속에 여행지마다 북새통이었다. 불행히도 함께 한 셔틀버스 운전자는 우리에게 계속된 금전을 요구하며 여행안내는 뒷전이었다.대낮인데도 길거리에서 용변을 보는 사람을 보고 놀랐고, 먼지가 펄펄 날리는 식당도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지난 번 업무차 한 번 왔는데도 불구하고 적응이 어려웠는데, 깨끗한 곳에서만 살다 이곳에 온 아이는 어떨까 계속 눈치만 보게 되었다. 기분도 풀어줄 겸 델리 부근의 관광지를 다녔지만, 가이드의 횡포와 더운 날씨에 아이는 시원한 카페만 찾았다. 뭐라도 하나 더 보여주고 싶었지만, 지난 번 국내 여행의 악몽이 생각나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며 오히려 본인이 불만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대충 여행을 마치고 남부로 이동, 초청 대학에 가서 총장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배정받은 기숙사의 방은 경악하리만큼 누추했고, 화장실은 사용이 어려울 만큼 청소와 정돈이 되지 않았다.더운 날씨에 방안에는 벌레가 수시로 날아들었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만이 더위를 달래주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 근처 호텔을 찾았는데, 그곳이나 대학 기숙사나 오십 보 백보였다. 어쩔 수 없이 거리가 가까운 학교 내 기숙사에서 숙박을 하며 강연 준비를 하였다. 그 시간 아이는 끔찍한 경험 아닌 경험을 하며 3일 간을 계속 머물러야 하는 스케줄에 그저 망연자실했다. 강연 당일 100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강연장을 찾았고, 내심 아들에게 영상 촬영과 질문 대답 시, 혹 소통이 불통되면 중간에 통역도 맡아주길 원했다. 아이는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고, 미국 내 직장 생활을 2년 정도 하던 터라 언어 소통이 원활했다. 그러나 강단에서 간절히 아이를 쳐다 봤으나 외면하고 휴대폰만 열심히 내려 다 볼 뿐이었다.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고 그 누추하고 더러웠던 환경 탓이라 생각하고 이해했다. 강연 후 만찬을 하러가도, 장소는 늘 깨끗하지 못했고 사람들의 친절과 밝은 미소는 굉장히 아름다웠으나 식탁 위는 온통 먼지 투성이었다. 다음 날 대학 부근 관광지를 돌아다녀도 델리와는 달리 길거리에는 온통 먼지만 자욱했다. 급기야 아이는 맥도날드와 유사하게 생긴 곳에서 쉬고 싶다고 말하고 우리만 나머지 일정을 채우고 돌아왔다.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환경과 벌레가 날아다니는 방 안, 더러운 화장실 등을 보며 아이는 연속적으로 충격을 받고 힘겨워했다. 7080시대를 겪은 우리는 그럭저럭 적응할 수 있었지만, 생전 태어나 처음 만나는 끔찍한 환경에 많이 놀랐을 듯했다. 그래서 일찍 델리로 길을 재촉했다.마지막으로 인도여행에서 아들과 함께 타지마할을 보고 싶었다. 같이 사진 한 장찍어서 컴퓨터 배경화면과 책상 위 작은 사진첩에 넣어 두고 싶었다. 다시 안내를 맡은 셔틀버스 기사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바꾸어 달라고 말하려다 참고 함께 아그라(Agra)로 떠났다. 가는 도중, 타지마할 가이드가 필요 없으니 부르지 말라고 했고, 단지 아이와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싶다고 몇 차례나 당부했지만, 소용없었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 중간에서 우리와 함께 탑승하고 원하지 않는 가이드를 잠시하며 100불을 달라고 했다. 너무 화가 났고, 셔틀기사에게 넌지시 화를 냈지만 어깨만 으쓱할 뿐 또 다시 알고도 바가지를 썼다. 아이도 화가 났는지 사진을 함께 찍는 것마저도 못마땅해 했다. 그거 하나 건지려는 마음에 스스로 애처로웠다.우리 모두는 화가 잔뜩 나서 델리로 돌아오는 4시간을 달리면서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번 국내여행에서의 참사와 더불어 인도여행도 힘겨운 여정이 되고 말았다. 그제야 아이와 함께 집에 잠깐 보고 지나칠 때는 몰랐지만, 장시간 함께 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난 번 근엄한 아버지의 태도로 여행을 망쳤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환경, 본인이 원하지 않은 일정으로 함께하는 여행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최종 마지막 여행을 다시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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