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달차에 실린 화장 거울이 눈발 속으로 달려간다거꾸로 묶인 식탁 의자 사이 벤자민 푸른 잎도 찰랑찰랑 딸려간다거울 속에도 펄펄 눈이 내린다//싸고 깨끗한 집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만리동 고개에서 마주쳤던 눈날리는 눈송이 안이라도 따뜻한 방 한 칸 얻고 싶었는데,부동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갈 힘이 없었다그래, 다닥다닥 붙은 저 집들 속으로는 더이상 들어가지 말자고갯마루에 주저앉아 풀풀풀 날리는 눈발을 아득히 올려다보며보이지 않는 먼 별자리를 새 주소로 삼고 싶었다//내 앞에서 나를 끌고 가는 저 화장 거울은 한 집안의 살림살이를 낱낱이 기억하고 있어서이사를 할 때마다 안과 밖을 비춰보며 누추한 기억에 흔들렸을 거다거울의 이쪽과 저쪽은 얼마나 멀까지금의 바깥은 어디쯤에서 안쪽이 될까거울 밖 눈으로 제 얼굴의 흠집을 지우듯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한사코 밀어내고 있는 생의 먼 저곳을거울은 언제쯤 끌어다가 안쪽 얼굴에다 주검 꽃으로 비춰줄 것인가만리동 고개의 철없는 감상처럼먼 저쪽이 있어서 이쪽을 가볍게 여길 줄도 알았는데그건 또 그것대로 쉬운 이사는 아닐 것이다.//우연히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보고서야 알게 된 이사의 이력서른 군데도 넘게 옮긴 빽빽한 주소들이 알고 보면 다 새로운 별자리였다거기서 살고 거기서 죽었으니결국엔 거울을 사이에 두고 왔다 갔다 했다는 거다거울에 부딪친 눈발이 내 어지러운 발자국을 안고 줄줄 흘러내린다역시 바깥이 안쪽을 지운다는 거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작은 트럭에 실려 눈발이 날리는 날 이사를 해 본 서글픈 기억이 있는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이삿짐으로 얹힌 화장 거울에 부딪히는 눈발이 마치 자신의 서러운 이사 내력의 발자취인 것만 같다는 것. ‘날리는 눈송이 안이라도 따뜻한 방 한 칸 얻고 싶었’던 절실한 온기를, 그만큼의 절박함을…거울은 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추고 지우는 기능을 가진 거울은 현실이라는 ‘바깥’과 과거라는 ‘안’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거울에 지워진 지난 날에서 이사를 한 것이고, 거울에 비춰진 현재에 이사 온 것을 ‘거울 속 이사’라고 했다. 이사 다닌 곳곳의 자리 터를 ‘새로운 별자리’라 했다. 신선한 느낌을 주는 시 한 편이다.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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