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텃밭에 씨 뿌려 틔운 어린 배춧잎에쬐그만 달팽이들이 기어오른다.흙빛의 보호색을 띈물렁한 것들.낮이면 흙 속에 엎드려 있다가밤이면 몰래 배춧잎으로 기어오르는마치 텃밭이 자신을 위해 차려 놓은 풍성한 식탁인 것처럼포만에의 기대감으로 잔뜩 몸을 늘어뜨린, 야행성들그 연체의 흐느적거림이 비애스럽지만이빨이 없어, 부드러운 새싹부터 갉아 먹는 食性의 습격을 받으면배추밭은 전멸이므로어쩔 수 없이, 밤마다 손전등 불빛을 켜들면그 불빛이 닿을 때마다 잽싸게(?) 흙빛의 보호색을 띤 패각 속으로 몸을 웅크리고물방울처럼, 흙바닥으로 도르르 굴러 떨어지는 것들밟으면, 뱉아 놓은 침처럼 힘없이 으깨지는 것들상징은무섭다.한때, 나도 은유의 달팽이였다.지게를, 달팽이처럼 등에 얹고, 세상의배춧잎을 기어오르던-.세상이자신 앞에 차려진 풍성한 식탁인 줄 알고어두워지면, 맛있게 갉아먹던 그 벌레의 길이자신의 길인 줄도 모르고-,오늘도/ 세상의 식탁 앞에 앉은, 물렁해슬픈 것들-.자신을 지킬 뼈 하나 없어, 등에 짊어진 패각까지 보호색을 띤은유의 달팽이들,/ 그 야행성들-.<수필가가 본 시릐 세상> 시인 자신과 동일시하는 달팽이를 메타포, ‘은유’로 보는 데는 시인 나름의 해석이 있어서다. 쉽게 드러내지 않는 내면처럼 달팽이에게서 그 자신을 본 것이다. ‘밟으면 힘없이 으깨지는’, 빛을 보면 ‘패각 속으로 몸을 웅크리는’, ‘자신을 지킬 뼈 하나 없어’, 물렁하기만 한 슬프디슬픈 족속, 달팽이가 ‘야행성’마저 닮아 있으니 ‘은유’를 보고만 것이다. ‘물렁해’서 안쓰러운 달팽이에게서 자신의 숨은 모습을 보고 있는 시인의 안쓰러운 눈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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