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샐 무렵마당에 인기척이 들려 나가보니큼직한 노루가 서 있더니옴마야지캉내캉 서로 놀래그냥 마주보고 멀뚱 섰는데제풀에 놀랜 노루가앞발굽으로 마당을 박차더니장독대로 뛰어드는기라그 바람에 / 내 시집오던 해일부러 장만해온 옹기를와장창 깨어놓고비행기처럼 몸 솟구치더니흙담 너머로 풀쩍 뛰어 달아나디더노루 섰던 다리엔발톱 긁은 자국 남아있고노루 타 넘은 담장 기와 다 부서지고장독대 여기저기엔빠진 털만 가랑잎처럼 우수수흘려놓았디더내 살아온 게 요 모양 요 꼴이다 싶어서나는 깨진 옹기를 들고 우두커니노루 간 곳만 봤니더<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이 시는 이동순 시인이 `마을 올레`라는 대구 KBS 기획 프로 「행복발견」의 금요방송에서 경북 예순세 군데 마을을 탐방하고 그것을 토대로 작성된 시집에 나온 시다. 취재하면서 그 마을 사람들의 살아있는 언어를 생생하게 풀어 놓은 것이다. ‘장소선 할머니’는 마당에 멋모르고 뛰어든 ‘노루’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겁 많은 노루와 할머니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너무 놀랐던것이다. 노루가 허둥지둥 도망친다는 게 하필 장독대였다니… 담장 기왓장 부셔지는 소리, 장독 깨진 소리를 들으며 ‘우두커니 노루 간 곳만 봤니더’ 라고 했다. 세월로 묵힌 할머니의 소중한 장독대를 망가뜨려 놓은 노루를 원망하기는커녕 ‘내 살아온 게 요 모양 요 꼴이다싶어서’라고 중얼거리는 할머니가 왜 이리 애잔할까. 체념하고, 포기하며, 버텨온 삶의 주름살이 더 굴곡져 보여 더욱 측은했다.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