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누각(沙上樓閣)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건 집이건 모든 건축물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의 반대적 표현이다. 모래위에 집을 지을 수야 있겠는가! 그만큼 부실하고 취약하게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경서에는 집을 사람이라 비유했다. 다리 발이 시원치 않은 사람, 정신이 흐릿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은 사람이다. 역풍이 왔을 때 역경을 이겨내지 못함을 말하기도 한다.세상을 움직이는 존재는 사람이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모든 만물을 생육, 번성,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 이는 신과 같은 완전한 인간을 말함이며 또한 주어진 사명(使命)을 다해야만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공자는 15세를 지아비(배움에 뜻을 둔 것)라 했고, 약관(弱冠)의 나이 20세를 지나 30세에 자신의 뜻을 세우니 입지(立志)라, 시간이 지나 학문에 정진하여 바르게 자신을 가꾸어 40세가 되어 지식과 지혜, 경험으로 자신을 성장하여 불혹(不惑)에 접어들었고, 50세에 세상과 하늘에 뜻을 깨우치니 지천명(知天命)이 되었다. 60세가 되니 어떤 말씀이든 다 소화시킬 수 있는 이순(耳順)이라, 그리고 70세가 되니 옛날의 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경지에 도달(從心)하였다 했다.공자께서 열거한 때에 따른 표현은 진정 모든 사람들이 이런 과정 속에서 튼튼한 반석 위에 집처럼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고자 함이라…인간사에 알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일들이 분주하게 일어나며 이 많은 문제들이 결국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이기에 생각을 좀 좁혀보아야 한다.부실하고 허약한 사람은 그렇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고 또한 병든 사람은 병들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 인생이라.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고 한다. 바로 근본바탕인 기초가 잘 세워져야 함을 말함이며 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이루기 위함이다.한비자(韓非子)에 보면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 스스로 영위하는 것을 사(私)라하고, 사에 위배되는 것을 공(公) 이라고 하였다. 공과 사가 서로 위배됨을 알았음에도 이(利)가 서로 같다고 함은 명철하지 못한 데서 오는 환난(患難)이라 한다. 서로 용납되지 않는 일은 양립될 수 없다. 적을 베어 죽인 자가 상을 받으면서도 모두를 한결같이 사랑하라는 겸애설을 신봉하고, 갑옷과 예리한 검을 가지고 국난을 대비하면서도 진신(眞身)의 꾸밈을 아름답게 여긴다.윗사람을 존경하고, 법을 두렵게 아는 백성들을 버리면서 협객자객의 무리들을 기른다. 하는 일이 이와 같아서는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강한 군대로 만들 수 없다. 일에 종사하는 자가 자기의 업을 소홀히 여기고, 놀면서 학문하는 자가 날로 많아지는 이것이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소이이며 결국 부실한 정신으로 멸하게 된다. 모래 위에 지어진 사상누각이다.인생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근본은 뿌리요 다리요 참된 마음인 인성(人性)이다. 이런 근본 없는 자기생각과 거짓과 비진리에 도취되어 그것이 자신의 뿌리요 기둥이 되려한다면 어찌 위에 지어진 집이 버텨내겠는가?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역풍에 쓸어지지 않으니 바로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된다. 아니면 부실하여 바람에 넘어가 결국 죽게 된다. 불혹(不惑)을 거쳐 지천명(知天命)에 왔을 때 “혹(惑)하는 것이 없이 천명(天命)을 깨달아 행할 때 만이 사상누각 같은 집(사람)이 아닌 반석(盤石) 위에 사람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때가 되어 하늘의 음성이 들릴 때 자신 있게 그 음성을 지혜(智慧) 삼아 반석 위에 집을 만들고 안식(安息)의 거처를 삼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천수(天壽)를 넘기며, 광복(光復)의 세상과 진정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