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석(水石)을 전연 모르지만
참 이쁘더군,강원도의 돌.골짜기마다 안개 같은 물냄새매일을 그 물소리로 귀를 닦는강원도의 그 돌들,/ 참, 이쁘더군. 세상의 멀고 가까움이 무슨 상관이리.물 속에 누워서 한 백년,하늘이나 보면서 구름이나 배우고돌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더군. 참, 이쁘더군.말끔한 고국(故國)의 고운 이마,십일월에 떠난 강원도의 돌.<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마종기 시인은, 대한민국 최초의 아동문학가인 마해송(본명은 마상규(馬湘圭))의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의대를 거쳐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과 조교수와 방사선 동위원소 실장을 지낸 바 있다. 마종기 시인은 일본에 살면서도 끝내 개명을 하지 않은 아버지를 이렇게 썼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의 한계를 심어준 사람. 이 가능과 불가능을 집약할 수 있는 대명사는 아버지밖에 없다. 그것이 神도 世上도 그의 이름을 빌려 쓰는 이유일 것이다.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무한히 원망스러운, 그 애증의 골마다 보름달이 뜨고 박꽃이 핀다. 삶과 죽음이 싸우듯, 사랑과 미움이 서로를 찌르고 희망과 절망이 자리를 바꾸듯, 그리고 눈물이 왼뺨과 오른뺨의 길이를 재듯, 우리는 계절의 한 찰나에 핀 꽃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서로를 생각한다. ~중략~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 나는 이렇게 고백했다. "다음 생에도 부자지간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아버지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마시인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깊이가 느껴지는 글이어서 발췌해 보았다. 고국을 떠나면서 쓴 시 ‘강원도의 돌’은 굳이 ‘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터였다. ‘세상의 멀고 가까움이 무슨 상관이리. 물속에 누워서 한 백 년, 하늘이나 보면서 구름이나 배우고 돌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의 뒤 안에는 원망도 했던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아니었을까. 승화된 심정적 고백은 아니었을까. 고국(故國)이 곧 아버지요, 강원도에서 만져 보았던 그 돌이 가장 한국적인 아버지의 본체일 거라 짐작해보는 것이다.내가 사는 곳에서 볼 수 없었던 강원도 옥계의 맑은 계곡물을 따라 비 오고 있는 둘레길을 걸어보는 아침, 투박한 돌멩이랑 매끈한 돌을 주워 양손에 쥐어 본다. 힘이 느껴진다. 산등성이에 안개비가 아련하다. 칡 향을 몰고 온 바람 한 줄기 온몸을 휘감는다. 모든 것이 이뻐 보인다.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