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페이스 북>이라는 SNL 플랫폼에 푹 빠져 살았다. 특정 플랫폼을 추켜세우거나 비하하기 위한 목적의 글은 아니다. 다만 모든 소통이 단절되고 외로움과 불통의 시대에 살며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외부와 소통하는 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감독이었던 퍼거슨이 했던 말. “SNS는 인생의 낭비다. 인생에서 그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백만 가지는 있다.”라고 일갈했다. 통신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채팅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갈구하는 그 시간에 좀 발전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더 나은 인생이라는 뜻일 게다. 그러나 꼭 그렇게 단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자살을 하다 실패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남긴 말.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페이스 북 사연을 통해 드물게 가슴 아픈 사연, 아름다운 사연, 늘 배움을 주는 그런 고마운 사연도 있다. 물론, 어느 나라라고 밝히긴 힘들어도 친구 추가를 해 보면 민망한 사진도 올라온다. 또 어떤 아프리카 국가들은 해외 유명인을 사칭해서 금품을 요구하는 메신저를 보내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서로 협력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좋은 기능을 나쁜 곳에다 사용을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관계망,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라는 SNS의 사용을 추천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사연과 추억이 있는 글들도 있다. 최근 온라인으로 사귄 어느 페북 친구가 올린 사연을 허락 끝에 소개해 본다. 이하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연이다.<아버지가 훈육을 위해 회초리를 든 것을 지금까지 나는 딱 한번 보았다. 한번, 이라서 인가. 그때의 일은 잊히지 않고 아버지를 생각 할 때면 어김없이 출몰해서 문장이 되곤 한다. 그것도 자주. 고등학교 시험에 낙방한 셋째 오빠가 가출했을 때 아버지는 모든 일을 손에서 놓고 오빠만 찾으러 다녔다. 누군가 어디서 오빠를 보았다고 하면 그게 어디든 달려가셨다. 후기시험이 코앞인데도 오빠를 찾지 못하자 아버지가 앓아누웠다. 오빠는 어떻게, 집에서 먼 무주까지 갔었는지. 무주 읍내에서 불량해 보이는 청년들 무리에서 오빠를 본 것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앓고 있던 아버지는 바로 일어나 무주로 갔다.그곳에서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어울리지도 않는 통바지를 접어 입고 껄렁하게 손을 넣고 제 나이보다 몇 살은 더 많은 청년들 속에 섞여 있는 오빠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도 겨울밤이었다. "밥 먹자!" 아버지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오빠와 마주 앉아 국에 밥을 말아 저녁밥을 먹었다. 긴장이 되어 자꾸 수저를 내려놓으려는 오빠에게 아버지는 더 먹으라고 했다. 오빠는 야단도 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드시는 아버지 앞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큰오빠는 작은방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자 아버지는 장롱 위에서 신문지에 꽁꽁 싼 것을 꺼내들고는 셋째 오빠에게 가자, 며 앞장을 섰다.어디를 가자는 것인지 말해 주지도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가 따라 일어서자 나도 엄마 손을 잡고 따라붙었다. 저물녘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꽤 쌓여 있었다. 생각지 못한 일들은 언제나 일어난다. 신문지에 싸인 것은 회초리였다. 아버지는 빈집에 오빠를 데리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기는커녕 우리들에게 꿀밤 한 대도 때린 적이 없었으므로 그 많은 회초리가 다 부러질 때까지 오빠에게 매질은 하실 줄은 엄마도 생각지 못했다. 셋째 오빠의 고등학교 시험 낙방이야말로 아버지로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아버지에게 셋째는 무엇이든 넘치게 잘해서 장차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모르겠는 아들이었으니까. 학교 선생님들도 셋째를 탐냈다. 밴드부 선생은 북을 치게 하고 싶어 했고, 배구부 코치는 배구 선수를 시키고 싶어 했다. 게다가 오빠는 공부도 일등을 놓친 적 없이 잘했다. 어쩌면 시험에 낙방하고 가장 놀랐던 사람은 셋째 오빠 자신이었을지도. 하다못해 체육대회 달리기에서까지 일등이었던 자신이, 성적이 더 낮았던 친구들이 합격한 고등학교에 낙방을 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 모습에 지레 놀라서 그 빈집 눈 쌓인 마당에 주저앉아 발을 뻗고 울었다. "시험에 좀 떨어졌다고 집을 나가야?" 오빠는 끅끅 울며 회초리를 맞았다."앞으로 뭔 실패만 하면 다 집어치우고... 집을 나갈 테냐?" 셋째 오빠가 다리를 절며 전주로 후기 시험을 보러 가던 날 아침에도 눈이 펑펑 내렸다. 아버지는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 마당의 눈을 깨끗이 쓸어놓았다. 오빠가 타고 갈 버스가 도착할 신작로로 이어지는 고샅까지. 아버지는 아궁이 앞에 둬서 따뜻해진 신발을 셋째 오빠에게 신기고 털목도리를 둘러주고 장갑도 끼어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직한 목소리로 "시험에 떨어져도 된다."고 했다. "뜻대로 안 돼도 내년에 다시 시도하면 되니 시험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라고." 오빠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창가에 서서 신작로에 서 있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사연은 여기서 끝이 났다. 무척 궁금해진 끝에 몸이 불편한 그 분에게 댓글을 남겼다. “오빠는 나중에 어떻게 되셨나요?” 돌아온 대답은 “Unhappy”였다. 세월이 한 참이 지나도 아직도 많이 아프셔서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는 짧은 대답에 한참을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사는가 보다. 힘겨움과 아픔, 고통 그 많은 말들을 한 마디로 “인생”이라고 하나보다. 인생의 머나먼 길을 걸어가며 만나는 사연들 사회 관계망을 통해 또 한 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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