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세상사(世上事)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도시(都市)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 좋게 내려치면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는 삶의 경륜이 가져다준 지혜가 있다.그 지혜는 스스로 터득한 것이므로 어떤 이론보다도 앞서 있다. 권위가 있다는 뜻이다. ‘참깨를 털면서’-나이가 덜 든 손자와 나이가 들 만큼 든 할머니-의 시각이 다르다. 손자는 참깨를 털 때 처음부터 있는 힘껏 내리치지만,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신다. 손자처럼 있는 힘껏 내리치면 제자리에 있어야 할 참깨들이 밖으로 튀어 나가게 되어 있다. 할머니는 토닥토닥 참깨를 두드려서 밖으로 튀는 참깨 알 없이 참깨를 턴다. 처음이나 끝이나 할머니는 똑같은 속도와 크기를 유지하신다. 즉 힘의 안배를 고르게 하고 손실률을 줄이는 방법을 터득하신 탓이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수고한 보람도 찾는다. 완주를 목표로 하는 마라톤의 원리도 같은 이치다. 할머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지혜를 가르치고 싶어하신다.할머니는 손자에게 한 가지 더 타이르신다.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힘껏 내리쳐서 참깨 모가지까지 털려면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것과 참깨 모가지가 떨어져 나가게 되면 참깨 낱알만 모아야 할 때 일거리가 더 생기지 않느냐는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배려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손자. 지혜를 익히는 중인 것이다.‘천천히 꾸준히’ 하는 일과 ‘신속히 단번에’ 해야 할 일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삶의 질을 훨씬 높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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