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누군가 두고 간 바둑판이 하나 있다흰돌 검은돌 흰돌 검은돌흰돌 흰돌 흰돌 검은돌 검은돌 검은돌검고 흰 들판이라 불러도 좋겠지//명백함에 대한 명백함은 명백함의 명백함을 넘어서지 않는다꼭 그만큼의 명백함에 대해꼭 그만큼의 암묵적 동의에 대해//거짓을 말하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도의를 도리를저버리지 말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숲은 격앙의 진원지진심을 다해 전하고 싶은//무엇을/그것을//그리하여 우리의 사몽우리의 사몽은 어제의 기억처럼 늘어서 있지//양탄자와 구두 단추/빗자루와 빗자루와 빗자루와 빗/자루와 빗자루빗자루에 집착하는 마음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여기 오래된 약속이 하나 있다/ 잊으라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잊지 말라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더 이상 울지 말라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진홍의 붉은 불그레한 누군가의 식도 언저리를 지나는초록의 검은 빛나는 이끼 이끼 이끼 웃자란 이끼들웃자란 찌꺼기들 내뱉지 못한 찌꺼기들에 대해//목소리의 색깔을 식별하라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식별할 수만 있다면// 식별할 수도 있을까//그리하여 사몽은 오늘도 빗자루질을 한/ 사몽 사몽은 낙엽을 쓸고 쓸고 또 쓴다서투른 문법으로 빗자루질을 한다 한다 한다그러나 사몽은 긴머리 긴머리보다 더 긴머리나뭇잎은 계속 계속 떨어지지 쓸고 쓸어도 쌓여만 가지//말할 수 없이 긴 머리로/ 사몽은 나아가고 사몽은 되돌아오고이 끝없는 공허의 숲의 적막의 둔덕의 언덕에 앉아둥글게 퍼져나가는 구름의 빗자루질을 낙엽의 빗자루질을<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우리의 사몽은’ 누구인가? 바둑판의 흰돌과 검은 돌의 관계 속에 있는 사몽. 거짓과 진실의 사이에서의 중간, 집착과 망각의 사이에 서 있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식별하라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 ‘사몽은 나아가고 사몽은 되돌아오고 이 끝없는 공허의 숲의 적막의 둔덕의 언덕에’ 앉아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몽은 시인의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들의 공허한 어떤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들의 내면을 움직이고 있는 두 개의 바둑돌,흰 돌과 검은 돌의 대립이기도 한…<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