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일이 물소리처럼 아릿하다, 여기는 온통침묵을 베껴 적은 일생일대의 저작물들죽음은 없고 묘비만 남은 생애들, 온통 여기서황금빛 서가를 물들이고 있다형체는 없고 기억만 살아 있는, 여기는 온통끝없는 갈림길의 문장들, 침묵의 발걸음이한 뼘 두 뼘 숨을 쉬고, 서가에 이마 기댄 이들의일평생, 한낱 꿈으로만 흘러갈 순 없으니오늘 하루의 회전문 곁에빗물 젖은 우산이 꽂혀 있다창밖의 나뭇잎을 흔드는 빗방울들영원의 찰나를 깨워놓는데사진 속의 여자는 말이 없다 등을 구부린 채한사코 액자 밖으로 팔을 내뻗고 있다백 년 전의 이야기처럼하루의 길이는 달라지지 않는데일몰의 빛은 짧고침묵의 투숙객이 펼쳐놓는방명록, 묵직한 손 글씨가그 일생의 행적을 말해주는데결국은 모래시계처럼 비워지는, 여기는 온통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일주일에 서너 번은 작은 도서관에 간다. 동네 작은 도서관은 편안하다. 어떨 때는 철푸덕 주저앉아 책장에 기대어 분류된 목록의 책을 한 권씩 꺼내 보고 제자리에 꽂아 놓으면서 내 나름의 도서 순례를 즐긴다. 골목길 같은 책장과 책장 사이 어쩌다 내가 주저앉아있는 곳을 방문객이 비좁게 지나려고 하면 얼른 내 다리를 오므려, 미안해서 소리 없이 빙긋 웃어준다. 눈이 마주친 그 순례객도 배시시 웃어주곤 하는 것이다. ‘침묵의 도서관’에서 서로를 다 안듯한 편안함은 그럴 때 온다. ‘창밖의 나뭇잎을 흔드는 빗방울들 영원의 찰나를 깨워놓는데’ 빗방울 소리에 깊숙이 빠져들었던 영원의 세계에서 ‘찰나’로 돌아오는 순간에 현실을 자각한다. 독서의 마력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한다는 점이다. 내가 책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흡수해버린다. 나를 자유자재로 날게 하고 기게 하고 걷게 하고 헤매게 한다. 그 느낌…‘침묵의 도서관’은 결코 침묵만이 그곳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는 데 있다. 나를 넓고 광활한 세상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는 데 있다.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