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기 전에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여자시를 쓰기 전에이불을 깔았다 개고 걸레질을 하는 여자시를 쓰기 전에밥을 안치는 여자시를 쓰기 전에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여자상한 음식을 손으로 쓸어 담으면서음식이 상하는 만큼 나날이 상해 간다고 느끼는 여자시를 쓰기 전에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자아이 실내화를 빨고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 여자시를 쓰기 전에돈을 벌고 돈을 내야 하는 여자시를 쓰기 전에시를 읽어야 하는 여자읽으면서 시란 정말 알 수 없다고 푸념하는 여자읽으면서 시를 써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여자읽으면서 써 온 반생과 써야 하는 여생을 후회하곤 하는 여자푹푹 한숨 쩌 내는 여자 퉁퉁 불어 투덜거리는 여자이윽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여자하루가 저물면/ 시는 쓰지 않고식탁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어디다 시를 두고 온 사람 모양골똘히 아래만 보고 있는 여자머릿속은 가득하지만 시만 들어 있지 않은 여자뒤숭숭한 세간들 사이로 시만 실뱀처럼 빠져나간 여자차 있으나 늘 텅 비어 있는 여자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언어라는 공간과 사색의 초월적 시각을 표현해야 할 시인이 현실(現實)에 붙잡혀있는 상황적 고뇌라 해야 할까. 그 고뇌가 실감지다. 일상의 언어로 그 고심의 흔적을 낱낱이 보여준다. 꾸밈이 없다. 그래서 시인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 것이다. 詩가 탄생하기까지 ‘사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는 가벼운 인식이기 이전에 시를 써야 한다는 시인의 의무감이 더 돋보인 것이다. ‘머릿속은 가득하지만 시만 들어 있지 않은~시만 실뱀처럼 빠져나간~차 있으나 늘 텅 비어 있는’ 시인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현학적이지 않아서 훨씬 편한 이 詩만으로도 충분하다고…<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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