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한 곳에 멈춰 서서 정신 나간 듯 길거리 악사의 연주에 빠져 버렸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섬을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여행하다 ‘리알토’다리를 거쳐 산마르코 광장에 다다랐다. 유유자적 자유여행을 하며 꼬불꼬불 미로를 지나 광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골목길. 좁은 길을 가득채운 웅장한 아코디언의 향연.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dwv58)’이 웅장하게 들려왔다. 조그만 아코디언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함에 놀랐고, 그의 연주 실력에 또한 놀랐다. 앞에 놓인 악기 통에 동전을 던져 연주에 대한 사례를 표하고 광장으로 나섰다. 유럽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디든 꼭 있는 드넓은 광장, 그리고 그 한 켠에는 늘 우물, 동상, 상가들을 볼 수 있다.우리가 사는 동양권에서는 길이 중심이 되어 도시가 형성되는 것처럼, 유럽은 광장이 중심이 되어 도시 발전이 이루어진다. 경부고속도로, 대동맥이라고 일컬어지며 주변지역을 상권으로 도시가 발전한다. 그러나 유럽은 대개 광장을 중심으로 교회와 성당 등 종교시설이 들어서고 주민 공동시설, 우물, 사람들로 상권이 형성된다. 이는 광장문화로 발전하고 자연스레 토론이나 대화를 나누는 자리, 즉, <포럼>으로 이어진다. 도시의 특정 주제와 그 의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며 지역 발전의 장으로 활용되는 장소였다. 사회자의 지도 아래 특정인의 연설을 한 후 청중의 질문과 토론으로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유럽은 광장을 기반으로 <포럼>을 통해 광장문화를 키워왔다.유럽에서 광장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였다. 산 위의 <아크로폴리스>가 신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아래 <아고라>는 인간의 중심지였다. 마치 동양권에서 산 위에 무덤을 짓고 그 아래는 후손이 살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원래 <포럼>은 그리스 아고라를 배경으로 시작되어 로마시대에서 <포럼>의 형식으로 발전된다. 유명한 격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처럼 고대 로마인은 수많은 길을 내고 그 중심으로 교차점마다 <포럼>을 만들었다. 본디 <아고라>는 ‘모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모여 정보를 교환, 토론, 회의도 열었다. 사람이 모이는 장소이니 이곳에서 시장이 만들어지고 상거래가 시작이 된다. 로마 시내를 다니다 보면 이제는 허물어졌지만 여전히 화려한 열주(列柱)를 볼 수 있다.열주(列柱)는 당시 아고라에서 벌어진 포럼의 경계선으로 표시됐다. 초기 로마의 포럼은 사각형의 모습을 띄고 네모반듯한 형태를 띠었다. 오늘 날 우리가 광장을 스퀘어(Square) 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럼 왜 유럽이 스퀘어, 즉 광장으로 발전했을까? 그것은 유럽 중세부터 확장된 기독교가 배경이 된다. 도시가 생기면 자연스레 교회가 중심이 되고 신의 성지인 그곳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교회를 찾는 많은 사람들로 그들이 다니는 곳은 자연히 상권이 발달한다. 그리고 그 상권이 발달한 곳에 위치한 광장에는 작은 분수나 우물을 두어 사람들이 물을 길러가게 했다. 사람들은 다시 우물이 있는 광장으로 모이면서 자연스레 광장의 문화는 발전한다. 중세 유럽의 광장 문화가 크게 번성을 한 이유이다.도시가 생기면 교회가 그 중심에 들어서며, 사람들은 교회를 짓기 위해 거대한 건축 자재를 쌓아둘 별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수 백 년에 걸쳐 진행되는 공사 끝에 교회나 성당이 완공되면 자재를 쌓아 둔 작업장의 보관소는 비워지고 그 곳이 광장이 된다. 드넓은 광장마다 시장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이고 시청사, 귀족들의 저택이 먼저 들어서는 것은 당연시 되었다. 그리고 다시 좀 더 작은 규모의 교회가 들어서고 다시 돌 작업 터가 광장이 되고, 관공서가 들어서고 다시 시장이 된다. 그 광장 한 가운데는 시장과 우물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동상이나 예술 조각 작품들이 들어서 광장을 장식했다. 서민들은 구 광장과 신 광장 사이의 골목에 빽빽이 들어와서 살게 되며 유럽의 문화는 자연스레 형성되었다.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답답하게 생긴 폐쇄적인 도시구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탈출하기 위한 중요한 공간이 바로 광장이다. 유럽은 이 광장을 통해 경제활동도 하고 의견도 교환하는 <포럼>도 열고 축제도 즐긴다. 프랑스 혁명 같은 격동의 시대에는 광장은 혁명의 무대가 되었다. 단두대로 왕과 귀족들을 처형한 한풀이 장소이기도 했다. 광장은 유럽의 수많은 전쟁과 혁명 끝에 민주주의를 꽃피워온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말했다. “유럽의 와인이 왜 그토록 붉은 줄 아느냐?” 그것은 그 땅에 흘린 피의 역사와 일맥상통하는 문화와 역사의 수많은 변곡이 있었다는 상징이다. 광장은 경제적인 중심, 시장과 민주주의의 중심인 공론과 포럼, 교류가 활성화되는 곳이었다. 상업이 발달하고 의견을 나누기 위한 장소가 만들어지면서 그들의 민주주의와 경제는 점점 성숙해져 갔다.이에 반해, 우리의 광장은 과거에는 5,16 등 혁명이라는 군사적 느낌 등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각종 단체들의 투쟁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광장은 포털의 게시판, 인터넷 포럼, 온라인 몰, 마트나 혹은 줌 등 플랫폼의 비대면 광장으로 다가와 온도차를 느낀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앞으로의 광장은 어떻게, 어떤 형태로 변해 나갈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광장이 만들어 낸 포럼, 민주주의, 경제 발전의 순기능을 오늘에 되새겨 미래를 준비하는 <경상매일 상생포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한 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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