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는 6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잡지 않는다.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서다. 등딱지 지름이 9㎝ 미만인 어린것은 그물에 올라와도 바다에 놓아준다. 몸통이 빵처럼 생겨서 ‘빵게’라고 하는 대게 암컷도 번식을 위해 잡는 것을 엄금하고 있다. 대게 철이라면 금어가 풀리는 12월 1일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를 말하지만, 그 기간 내내 대게가 제 맛을 내는 건 아니다. 11월 말께 우리나라의 ‘대게벨트’인 울진의 죽변에서 후포를 거쳐 영덕의 강구, 포항 구룡포ㆍ감포까지 오가면서 대게잡이 상황을 살펴보면서도 그런 사정을 알 수 있었다. 포항 지역에서는 아쉬운 대로 대게잡이를 하고 살이 덜 여물었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판매한다. 1월은 되면서 살 오른 대게들이 잡히기 시작 한다. 본격적인 제철이 된 것이다. 대게는 설 전후가 절정이다. 살이 여물고 국산 대게 특유의 단맛도 깊어진다. 또한 이 시기에는 값도 가장 비싸진다. 맛도 맛이지만 설 선물용으로 전국에 팔려 나가기 때문이다. 제철 대게는 온 몸에 살이 꽉 차 있고, 삶은 게 몸에서 살을 빼내면 후두둑 떨어지는 육즙이 달착지근하다. 살에 이 단맛이 가득 차 있다. 이 맛이 수입품과 국산의 가장 중요한 차이다. 대게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대게를 자주 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값도 비쌀 뿐더러 우리나라의 ‘대게벨트’가 멀고도 외진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동해안 ‘대게벨트’의 양대 축인 울진군과 영덕군의 대게 원조 논쟁은 뜨겁기만 하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울진군에서는 한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게는 울진에서 더 많이 나는 데 왜 영덕대게라고만 하느냐, 모든 대게에 영덕이라는 지명을 붙이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 생각해 보면 영덕대게라는 말이 법으로 정한 것이 아니고 입에 붙은 버릇에 지나지 않은데 그 시비를 법으로 가려 달라고 요구한 것은 어딘지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법원은 싸우지 말고 영덕에서 나는 대게는 영덕대게로 하고 울진에서 나는 것은 울진대게로 하자고 합의를 유도했다. 이후 울진군은 울진대게를 알리는 데 엄청난 공을 들였고 효과도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전국 방송의 드라마에서 해 준 한마디가 얼마나 감격적이었을까. 억만금을 주고도 만들기 어려운, 자손대대로 써먹을 수 있는 광고카피를 공짜로 얻고 무료 방송도 해준 셈 아닌가. 게다가 영덕군민들이 가만히 있었으면 그 효과가 반감됐을 텐데 부르르 떨고 일어나 흥행효과까지 높여 줬으니,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챙겨 불쏘시개로 쓰는 격이다. 두 지자체의 대게 다툼은 대게축제로도 신경전이 뜨겁다. 1996년 4월부터 영덕군이 강구를 중심으로 대게축제를 시작하자 울진군도 2년 뒤인 1998년부터 같은 시기에 후포항에서 ‘울진대게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그 후 2003년 4월 대게축제를 앞두고는 양쪽에서 개발한 대게요리를 가지고 또 한차례 홍보전을 벌였다. 영덕군에서는 ‘우리음식연구회’를 만들어 ‘게맛 그라탱’과 ‘게 야채밥 찜’이라는 개발요리를 선보였다. 이에 울진군에서는 대게를 날로 먹는 ‘대게 회’로 치고 나갔다. 영덕이 퓨전요리를 내놨다면 울진에서는 어민들 사이에 전해 오던 전래요리를 고증해 복원한 것이다. 살아 있는 대게의 다리 껍질을 3분의2 가량 벗기고 얼음물에 담갔다 건진다. 그러면 짠맛도 적당히 빠지고 살이 오돌오돌해진다. 그 다리살을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양념장은 간장과 물을 적절히 배합하고 무즙, 고춧가루, 다진 쪽파 등을 더 넣어 만든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이와 함께 벌어진 또 하나의 경쟁은 ‘대게의 원점’을 주장하는 원조 유래 기념조형물들을 세우는 사업이다. 울진군 후포항 입구에는 나무로 큰 대게 모형을 조각해 바다를 배경으로 세우고 ‘대게의 본향’이라고 새겨 놓았다. 후포항에서 등대 뒤로 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바다와 어촌 풍경이 한폭 풍경화가 되어 펼쳐지는데 첫 마을이 울진군 평해읍 거일리다. 거기 해변 길가에 ‘울진대게 유래비`’가 서 있다. 비문에는 이런 내용이 새겨져 있다. “‘동국여지승람과’과 ‘대동지지’ 등에 ‘자해(자주빛 紫 게 蟹)’라고 기록된 울진대게는 14세기 초엽인 고려시대부터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잡아 왔으며, 우리 고장 주민들은 울진대게를 ‘처음’, ‘크고 단단함’의 뜻이 담긴 ‘박달게’,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같이 곧다’ 하여 ‘대게’로 불러왔다. 특히 ‘해포(게 蟹 물가 浦)’, ‘해진(게 蟹 나루 津)’, ‘기알게(지형이 게 알을 닮은 바닷가라는 뜻)’로 불리는 거일리는 울진대게의 주요 서식지이자 해양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왕돌초(짬)과 맞닿아 있는 마을로서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울진대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울진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생산량과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울진대게 자원의 서식지와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울진대게의 정통성을 바로세우기 위해, 군민의 뜻을 모아 대게잡이의 역사적 현장인 거일마을에 ‘울진대게 유래비’를 세우고 이를 역사와 후대에 전승하고자 한다. 2003년 4월12일 울진군수” 이보다 앞서 영덕군도 축산면 경정2리의 차유마을에 ‘대게元祖마을’ 비를 세웠다. 비에는 이런 사연이 적혀 있다. “고려 29대 충목왕 2년(서기 1345년)에 초대 정방필(鄭邦弼) 영해부사가 부임하여 관할지역인 지금의 축산면 경정리의 자연부락이며, 대게의 산지(産地)인 이곳 마을을 순시하였다. 그 후부터 마을이름을 영해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 왔다고 하여 차유(수레 車 넘을 踰)라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마을 앞에 동해의 우뚝한 죽도산(竹島山)이 보이는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흡사하여 대게로 불리어 왔으며 우리는 이 마을의 내력을 따라 영덕대게 원조(元祖)마을로 명명하여 표석을 세워 길이 기념코자 한다. 1999년 4월 17일 영덕군수 김우연” 객관적으로 이 두 비문만으로 대게가 어느 동네의 것인지 연고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연고가 있기는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대게가 주로 잡히는 곳은 남으로는 포항 앞바다부터 북으로는 울진의 죽변 앞바다에 이르는 동해 일대다. 특히 대게가 많이 잡히는 해역은 구룡포~죽변의 ‘대게벨트’ 앞바다에 자리잡고 있는 세 개의 거대한 바다 속 섬이다. 후포 앞바다 20㎞ 해역에 있는 왕돌잠과 포항의 칠포 앞바다 9㎞쯤에 있는 무화잠은 그 크기가 울릉도 만하다. 그 3분의1 크기인 신바위는 영덕군 축산항 앞바다 7㎞ 해역에 있다. 동해는 바다가 깊지만 이 세 지역은 수심이 얕은 곳은 5m 전후, 깊은 곳은 200m 정도의 대륙붕을 이루고 있어 각종 해초와 어패류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형성하고 있고, 영양도 풍부해 이곳의 해산물은 맛이 좋다고 한다. 대게도 대부분 이 해역에서 잡힌다.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은 왕돌초다. 대형 대게 음식점 상호로 쓰이면서 알려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대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해역은 왕돌초다. 그러다 보니 왕돌초는 때때로 대게의 상징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왕돌초(또는 왕달잠)의 ‘왕’은 아주 크다는 뜻이다. ‘달(돌)’은 땅이다. 양달ㆍ응달에 쓰인 ‘달’과 뿌리가 같은 말이다. ‘잠’은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바위다. 암초(暗礁)라는 뜻이다. 울진군 평해읍 거일리 어부들의 얘기에 따르면, 신라시대 왕돌초에 왜구들이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자 동해의 용이 꼬리로 섬을 쳐 산산이 부서져 바다 속으로 잠기고 말았다고 한다. 대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왕돌초가 울진군 해역에 있다 보니 대게 어획량도 울진군이 가장 많다. 그래서 울진군민들은 ‘영덕대게’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다. 왜 울진대게가 아니냐는 것이다. 울진 어민들 주장에 따르면 경북지역 대게의 70% 가량이 울진 근해에서 잡힌다고 한다. 그런데 1930년대 교통이 좋고 대게 가공공장이 있던 영덕으로 모든 지역의 대게가 집하되면서 영덕대게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영덕군에서는 강구~축산면 앞바다의 신바위에서 3~4월에 잡히는 대게가 살이 차고 다른 지역 대게보다 맛이 좋아 ‘영덕대게’라고 따로 부를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에게 이런 논쟁은 의미가 없다. 캄차카나 사할린 근해에서 잡힌 러시아산과 함흥 앞바다에서 잡힌 북한산 대게의 시장점유율이 국내산보다 높은 상황에서 국내산만 먹을 수 있어도 다행이기 때문이다. 국내산 대게를 ‘대게벨트’에 가지 않고 먹기는 쉽지가 않다. 우선 서울이나 다른 도시의 시장에 나오는 물량이 아주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값이 만만찮다. 한 사람이 먹을 만한 것도 한 마리에 몇 만 원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먹어 보자면 생산 현지에 가야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울진이나 영덕까지 가자면 길이 막히지 않아도 5시간은 걸린다. 왕복 10시간이니 하루 나들이로는 벅차다. 그렇다고 그 맛있는 대게를 포기할 수도 없다. 길이 있다. 안방에 앉아서 대게를 배달시켜 먹는 방법이 있다. 요즘 발달한 택배를 이용하는 것이다. 돈을 보내면 다음날 물건이 집에 도착한다. 대게는 살아 있는 것과 삶은 것을 원하는 대로 보내 준다. 물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상인들과 전화 한 통화로, 그도 아니면 인터넷으로 돈 먼저 보내고 물건을 주문하는 일이 안심이 안 될 수도 있다. 울진=김경호 기자 huripo@gsmnews.co.kr ▲ 후포 울진대게어시장건어물(홈페이지 https://www.badamasil.com)= 후포항 뒤편 한마음광장 옆, 옛 어시장 한가운데 있는 ‘울진대게어시장건어물’ 가게의 안수근(61ㆍ사진) 사장은 이른바 ‘울진대게’의 전도사다. 손님들이 오면 ‘영덕대게가 아니라 울진대게인 이유’를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열성껏 설명을 한다. 하루 백 번이라도 좋다. 대게를 찌면서, 찐 대게를 포장하면서, 대게를 수조에서 건져내면서, 쉼이 없다. 안 사장은 “교통의 편리성과 도시 지역에서의 접근성 용이해 현재 대게의 상가와 판매점이 밀집해 본향처럼 여겨지고 있는 강구에서 소비되는 대게 중 영덕 지역에서 어획되는 양은 극히 소량이며 대부분이 울진에서 잡힌 대게가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며 ‘울진대게 원조론’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 동네 사람이면서 30년 대게를 다뤘으니 대게를 고르는 안목이나 다루는 솜씨는 묻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다. 대게 삶는 동안 심심하니 먹어 보라며 내주는 작은 홍게도 다른 집 홍게와는 맛이 다르다. 안 사장 손을 거치면 살이 차지고 윤기가 나는 듯하다. 부인 윤후자(59)씨와 함께 후포에서 평생을 살면서 대게, 홍게, 건어물 등을 파는 후포항 어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지난 21일 후포에 대게 취재 나갔을 때 일이다. 방파제 앞에 있는 단골 전복죽 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혹시 다른 대게 상인은 없을까 싶어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대게 어디서 사면 믿을만하냐고. 아주머니는 복잡하지도 않은 길을 자세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안수근 사장의 가게였다. “선물할 거 아니면 굳이 큰 거 찾을 거 없어. 안 그래? 나야 큰 거 팔면 좋지만 집에서 식구들끼리 먹을 거면 6천원, 7000원짜리도 좋아. 그거 해.” 이런 식이다. 여주인 윤 씨는 직판장의 ‘일진’아줌마다. 가장 씩씩하고 정이 넘친다. 처음 보는 사람에도 살갑게 말을 붙여 늘이웃처럼 대하고 살던 사람처럼 만들 정도로 나이에 비해 애교가 넘쳐 난다. 그 대신 손님이 물건을 놓고 흥정을 걸면 단칼이다. “물건값 깎아 줘 가면서는 안 팔아. 차라리 실한 걸로 달라고 해.” 그만큼 물건에 자신이 있고 이문 또한 박하다는 뜻이다. 사업의 모토는 정직과 신용. 택배로 받은 물건에 문제가 있을 땐, 전화만 하면 바로 다시 보내거나 환불해 준다. 등딱지 지름 9~15㎝의 대게는 시기적인 어획량과 출항어선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시세 차이는 있지만 크기에 따라 대략 한 마리에 8천원, 1만원, 2만 원 정도. 한 마리 10만~15만 원쯤 하는 박달대게도 있다. 수입 대게도 취급하는데, 안 사장은 살이 실하고 튼실한 게에 대한 욕심이 많아 같은 수입품이라도 좋은 물건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작은 것은 최저 주문 단위가 10마리. 택배비 별도. 울진=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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