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세계로 나가는 한국 1. 메이드 인 코리아 새마을운동은 전 국민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며 열심히 일하니 소득이 증대되고 그것이 실생활에 자리함으로 노동의 가치를 몸으로 체험한 농촌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다. 농촌의 변화는 이미 산업화의 언저리에 진입한 도시민들과 합의를 이룩하면서 전 국민은 새벽종이 울리지 않아도 일터로 나아가는 자조의 터전을 닦아갔다. 한편 정부는 수출 제일주의라는 경제정책에 전력투구하였지만 우리의 수출품은 원시적 상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초라한 것이었는데 그 첫 번째 수출상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가발’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태반이 곱슬머리인데 이들은 바람에 휘날리는 동양 사람들의 머리카락에 대하여 항시 부러움을 갖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가발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자 날개를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두 번째,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미, 백합. 세 번째, 천으로 만든 강아지와 인형, 네 번째, 크리스마스트리의 램프, 구미 공장에서 개발하여 빨갛고 노랗고 파란 전구를 만들어 전 세계에 팔았다. 다섯 번째가 그 유명한 정체불명의 ‘코리아 밍크’였다. 서양 여자들이 신종 밍크코트에 매혹되었다. 도대체 이 밍크가 무슨 밍크냐? 알 수도 없고, 알릴 필요도 없었다. 가격은 비싸지도 않으면서 품질은 우수하고 그래서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등지에서는 제품이 없어 아우성이었는데 이로 인하여 진짜 밍크가 타격을 받은 것이다. 사실은 이 밍크가 한국에서는 처리가 곤란한 ‘쥐’들이었다. 우리나라에 쥐가 얼마나 많았는가, 각 시도 단위로 마리수를 할당하여 쥐잡기를 하고,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도지사가 쥐 때문에 파면당하기도 하였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전 국민이 오직 한 길, “우리도 할 수 있다.” “하여야 한다” 는 신념 하나로 전력투구한 것이다.
1964년 10월 30일, “한강의 기적”이 역사의 전면에 우뚝 서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여도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 하였을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경제개발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수출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달려들었던 때였다. 왜냐하면 우리 간호사, 광부들의 3년 치, 월급을 담보로 하여 돈을 빌려 왔기 때문에 수출이 아니고서는 갚을 길이 없었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룬 것이 한강의 기적이었고 우리는 이 날, “수출 1억 달러 달성”이라는 반만년만의 역사적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5년 1월,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를 돌파함으로 ‘한민족 원년의 해’를 선포하게 되었다. 100달러, 지금은 돈도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우리 역사에 전무후무한 사건이며, 일대 경사였다. 2. 베트남으로 가다 우리는 수출에만 전념하였다. 경제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미국으로 시장을 넓히는 한편 미국의 묵시적 지원 하에 수출 다변화라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설정하고 희망에 부풀어 있던 우리들에게 피할 수 없는 장벽이 드리운 것은 미국의 월남 파병 요청이었다. 이라크 파병처럼 미국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기도 하였고 특히 공산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는 아시아의 집단안전보장을 위한 도덕적 책임도 피할 수 없었으며, 우리가 월남으로 가는 대신 화력이 우수한 미군을 휴전선에 붙들어 놓는 것도 중요한 국가 방위의 전략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관건은 파병을 외면하였다가, 한국에서 다시 전쟁이라도 재발하면 그 때는 어떤 도움도 요청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월남전에 깊이 개입하면서 국내 반전여론에 몰리기 시작하였다. 베트콩들은 전사한 미군의 목을 잘라 전시하는가 하면 포로들의 처참한 실상을 미국의 종군기자들에게 보도토록 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하자, 왜 남의 전쟁에 미국의 청년들이 죽어가야 하느냐 하는 반전운동이 극대화 되면서 미국을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미국은 더 이상 단독으로 베트남전을 끌고 가기에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한국을 비롯한 10여개 국가에 파병을 요청하였고, 6 ᐧ 25 한국전쟁에서 3만4000명의 전사자를 내면서도 우리를 지켜준 은혜에 대한 답례로 한국도 결국 파병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