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자본주의는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자본주의는 2008년의 위기를 구제 금융이라는 시장 외부의 힘으로 간신히 넘겼지만, 부의 불평등, 높은 실업률, 문제점을 수습할 정치력의 부재로 다시 한계를 노출했다.
자본주의 심장이라는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발생, 전 세계로 확산했다. 자본주의 진영 내에서 자본주의는 사망했다는 극언까지 나왔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대안 모색 작업과 함께 위기에서 진화해온 자본주의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세계적 담론이 진행됐다.
◇ 99%의 반란..자본주의 몰락 위기
올해 9월 중순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반월가 시위는 자본주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십여 명으로 출발한 시위대는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로 상위 1%에 집중된 부의 불평등을 지적, 호응을 얻었다.
시위대 규모는 수백 명, 수천 명으로 늘어났고 시위는 보스턴, 워싱턴 D.C.,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미국에 이어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 갔다.
반월가 시위가 한 달여를 맞은 10월15일 미국과 아시아, 유럽, 중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80여 개국의 1천500여 개 도시에서는 자본주의 모순과 병폐를 지적하는 시위가 동시 다발적으로 개최됐다.
자본주의 내부에서도 자본주의 종언을 인정하는 발언이 나왔다.
미국 헤지펀드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은 "미국 자본주의는 2008년 이후 사망했다. 정부의 재정 투입 등으로 사망 사실을 숨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 탐욕ㆍ불평등ㆍ실업 가중..정치력 부재= 이번 위기는 자본의 탐욕을 통제할 수 없는 자본주의 자체의 결함과 경기 침체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서 비롯됐다.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과 위기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정치력의 부재는 불붙은 시위에 기름 역할을 했다.
자본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월가는 국민의 혈세로 3년 전 위기를 넘겼지만, 최고경영자(CEO)에게 보통 월급쟁이의 수백 년치 급여를 연봉으로 지급해 무전(無錢)인 서민의 분노를 유발했다.
구제금융을 받았던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는 2009년 직원 1명당 59만 달러와 46만 달러의 보너스를 뿌렸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지난해 기본급과 스톡옵션을 포함해 2천80만 달러를 받았다. 다이먼의 연봉은 미국 대형 은행 CEO 중 가장 많았고 전년보다 1천541%나 늘어났다. 휴렛팩커드(HP)의 전 CEO 레오 아포테커는 실적 악화로 물러나면서도 1천320만달러를 가져갔다.
99%의 삶은 정반대였다. 미국 인구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구의 비율은 15.1%였다. 1993년 이후 최고치였다. 미국인 2명 중 1명은 빈곤층이거나 저소득층이라는 조사까지 나왔다.
미국의 청년 실업률은 10%대를 웃돌아 8∼9%대인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다. 유럽연합(EU)의 청년 실업률은 평균 20%에 달한다.
미 정치권은 국가 부채 한도 조정 과정에서 대립으로 국가 신용등급 강등을 초래했다. 유럽의 정치권은 미봉책으로 재정 위기에 대응해 비난을 받았다.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졌고 정치권의 무능을 질타했다.
존 리 UC 버클리대 교수는 "반월가 시위가 3년 전 금융위기에서 초래됐지만 경제침체와 높은 실업률, 불평등의 영향이 크다"며 "전통적인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 자본주의 혁신 필요= 자본주의가 한계에 봉착했지만,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자본주의는 위기 속에서 진화하면서 살아 남은 혁신의 역사를 갖고 있다. 자본주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도 아직 찾지 못했다.
반월가 시위대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상표권 등록을 신청하고 시위의 진원지인 주코티 공원에서 시위 구호가 담긴 배지와 티셔츠 등이 팔렸다는 점은 자본주의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경제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는 위기 속에서 몰락하지 않았고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경제 학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영국의 경제 평론가 아나톨 칼레츠키는 "2008년 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의 거대 금융기관과 금융시스템은 물론 정치철학과 경제 시스템 전체가 붕괴됐다"면서 "자유로운 시장과 더 작은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자유 방임과 시장에 대한 불간섭이 자본주의 1.0 버전이었다면 정부 개입의 수정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2.0과 3.0 버전이었다. 앞으로 나올 4.0은 능력있고 적극적인 정부를 요구하는 버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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