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권광혁기자] 신일권(申一權) 교수 부산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신위의 삶과 시세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대학교, 부경대학교 외래교수, 위덕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 『우암선생 장기적거실기』, 『자하묵수』, 『사의당고적록』이 있고,저서로 『포항덕동민속전시관』(공저), 『한자16:동아시아를 여는 열쇠』(공저)가 있다. 논문으로 「수졸당 이의잠의 생애와 시문학을 통해 본 삶의 행적」, 「신위의 서예와 신숭겸장군 신도비」 외 12편이 있다. 위덕대학교 신일권 교수가 지난 3월 우암 송시열의 장기 유배 행적을 기록한 《우암선생장기적거실기(尤庵先生長鬐謫居實記)》를 완역한데 이어 이번에는 덕동마을 《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를 완역하여 포항 지역 고전번역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신일권 교수는 이보다 앞서 지난 2018년 11월에는 《포항덕동민속전시관(정부간행물 발간등록번호 75-5020000-000106-01)》을 저술하기도 했다.《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은 덕동민속전시관에서 보관해오던 유일한 필사본으로, 원본은 분실되었다.《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은 ‘사의당(용계정)’의 창건과 유래에 대한 기록으로 곧 덕동 마을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신일권 교수가 번역하고 덕동민속전시관과 포항시 기북면의 지원으로 발간됐다. 이동진 덕동민속전시관장은 발간사에서 “덕동 마을은 나의 선조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壃, 1621-1688) 공(公)이 마을 입향조이다. 당시 양동(良洞) 마을에 살던 사의당 이강이 360여 년 전에 거처를 정해서 세거(世居)하게 된 여강이씨(驪江李氏, 일명 여주(驪州)) 집성촌이다.마을에 소재한 ‘포항 용계정과 덕동숲’은 대한민국 명승(名勝) 제81호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우리나라에서 경치가 뛰어난 지역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용계정’은 계천(溪川)이 굽어보이는 높은 벼랑 암벽에 세워진 정루(亭樓)로 ‘용계정’이 곧 ‘사의당’이다. 사의당 이강이 1687년 기공하여 1697년에 완공하였다. 《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은 내가 ‘용계정’에서 발견하여 보관해 오다 지금 세상에 내 놓는다. 이러한 《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에 대한 역주 작업을 신일권 교수께 부탁하니 흔쾌히 승낙해주어 마침내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이 보다 앞서 지난 2018년 11월 《포항덕동민속전시관(정부간행물 발간등록번호 75-5020000-000106-01)》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신일권 교수가 ‘덕동마을’을 저술하였고, 최해철 작가가 사진을 담당했으나 발간하는 과정에서 책의 저자와 사진작가의 이름을 실수로 명시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밝힌다. 지금이라도 그 사실을 밝힘으로써 증거자료로 남기고자 한다.”라고 했다.이 책을 번역한 신일권 교수는 《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 해제에서 “덕동은 유교적 이념의 실천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유서 깊은 전통마을이다. 덕동 마을 선조들은 경관이 수려하고 의미 있는 마을주변 곳곳에 유풍(儒風)의 흔적을 남겼다. 경치가 수려한 시냇가에 정자를 짓고, 자연과 벗하며 소요자락(逍遙自樂)하는 것을 공부의 큰 방편으로 삼았다. 또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유람하며 감회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흔적을 남겼다. 이는 마을 주변의 자연명소에 이름을 붙이고, 산수자연을 즐겼던 흔적으로 나타난다. 《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은 덕동(德洞) 마을 ‘사의당(용계정)’에 대한 옛 기록이다. 덕동 마을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동생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의 후손이 형성한 마을이다. 이언괄-이응기(李應期)-향단(香壇) 이의주(李宜澍)-사의당(四宜堂) 이강(李壃)으로 대를 이었다. 양동마을에 기거하던 향단 이의주의 아들 사의당 이강이 덕동마을로 이거를 하면서 마을 입향조가 되었다. 마을 입향조(入鄕祖)인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壃, 1621-1688)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 諡號 文元公)의 동생인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 1494-1553, 양동마을 소재 보물 제412호 󰡐香壇󰡑기거)의 현손이다. 이언괄은 자가 자용(子容)이고, 호는 농재(聾齋)이다. 아버지는 번(蕃)이고, 어머니는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의 딸이며, 형은 언적이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학문을 닦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는 1545년(인종1)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은숙배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이언괄은 형인 이언적이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하는 동안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형 대신 자신이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등 남다른 효성을 보였다. 또한 형과의 우애도 돈독하였다. 이언적이 사화로 귀양 가게 되자 밤마다 향을 피우고 형의 조기 방환을 빌기도 하였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몸소 염습을 하고 묘소를 만들고, 삼년상을 치루었다. 이후 이언괄은 병든 몸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강계 유배지로 가서 형을 만나고 두 달 만에 돌아온다. 또한 귀양살이 하는 형의 고통을 억울하게 여겨 그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려 하기도 하였다. 이언괄은 그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곧 1553년 정월 초하루에 귀양지에 있는 형보다 먼저 생을 마감하였다. 형은 벼슬길에 나아가고 아우는 고향에 있으면서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으니 서로가 임금과 어버이에게 의리를 다하였다. 이 또한 인륜의 법도를 다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동생 이언괄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니 이른바 잠시 동안 가려졌다가 끝내는 한없이 빛난다는 것이 이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라고 썼다.덕동마을 《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 ; 옮긴이: 신일권, 소장: 덕동민속전시관, 발간처: 덕동민속전시관, 펴낸곳: 도서출판 제일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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