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론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의 피해금 감면에 난색을 보이던 카드사들이 끝내 `백기투항`했다.
2천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의 원성이 커질 대로 커진데다 당국이 카드사의 `도의적 책임론`을 제기하며 압박한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카드론 피싱은 피해자의 부주의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는 만큼 전액 감면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카드사들은 실제로 사기를 당해 카드론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원금을 깎아줄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피해구제 과정에서 진통도 예상된다.
◇"카드사 `법적` 책임 없어도 `도의적` 책임 있다" = 카드사들은 `속아 넘어간 사람의 잘못이 크다`는 이유를 들어 그동안 카드론 피싱 피해를 구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카드론 피싱은 수사기관 등을 사칭한 전화를 걸어 카드 비밀번호와 개인정보 등을 얻어내고, 이를 이용해 카드사에 카드론을 신청하는 수법으로 저질러진다.
카드사가 피해자의 계좌로 입금하면 범인은 다시 전화를 걸어 `범죄에 쓰인 돈`이라고 윽박지르고 돈을 이체받아 가로챈다.
자신의 정보를 모두 넘겨주고 송금까지 해 피해를 자초했다는 게 카드사들의 논리다. 금융감독당국도 법적으로 카드사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카드사들도 도의적인 책임은 피할 수 없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카드론은 `빠르고 편리한 대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신청이 들어왔을 때 본인 확인 절차가 까다롭지 않았다. 카드론이 범죄의 표적이 된 이유다.
한 당국자는 "카드론 피싱 신고를 받았을 때 카드사들이 고객의 재산을 보호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카드사들이 올해 카드론 영업을 중심으로 막대한 이익을 낸 만큼 `사회적 책임의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국은 이 같은 인식에 따라 카드사들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당국자는 "카드사들 스스로 이달 안에 공통으로 피해구제 기준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액감면은 어려울 듯…"사기피해 입증돼야 구제" = 카드론 피싱이 다른 보이스피싱보다 피해자의 상실감을 더 크게 만든다는 점도 여론을 움직였다.
보이스피싱은 대부분 피해자의 자산을 빼앗는 수법이지만, 카드론 피싱은 피해자를 채무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카드론 피싱 피해자 모임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넘친다.
순식간에 수천만원의 빚을 지게 된 충격으로 유산했다거나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위암 수술을 받은 한 피해자가 카드론 피싱을 당하자 고민 끝에 소주 2병을 마시고 사실상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자감면이나 분할납부 등 카드사들이 제시한 합의안에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는 혹독한 채권 추심에 시달린다.
카드사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11월 말까지 1천999건, 피해금은 202억원이다.
한 피해자는 "카드사들이 본인 확인을 강화하자 카드론 피싱이 줄고 있다"며 "카드사들이 진작 대응에 나섰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드사들이 이 같은 책임론에 못 이겨 피해구제에 나섰지만, 구제 범위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피해자의 과실도 분명한 만큼 원금 전액 감면은 어려워 보인다. 카드론 피싱에 당해 카드론을 받았다는 사실도 입증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피해금 일부를 감면하는 데 동의하지만, 카드깡 업자나 다른 사람과 짜고 사기에 당했다고 신고하는 사례를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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