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 주체라도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이란제재법이 늦어도 내달 2일부터 발효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석유 수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한국은 이 법으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하와이로 휴가를 떠날 때까지 미국 상ㆍ하원이 지난 14∼15일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한 6천620억달러 규모의 `국방수권법안(일명 커크-메넨데스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 도중 서명을 할 경우 이 법은 즉각 발효되며, 만일 서명을 하지 않더라도 미 의회에서 처리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를 적용하면 내년 1월2일부터 발효된다.
현지 외교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이 법안에 조기 서명하지 않은 것은 법안에 포함된 `테러용의자` 구금관련 조항을 놓고 인권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면서 "어찌 됐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이 법안은 곧 발효된다"고 말했다.
내주부터 법안이 발효되더라도 이 법안의 실제 적용은 6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중앙은행 제재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인해 이미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의 주요 기업과 민간은행 외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이란 중앙은행까지 제재에 포함시켜 이란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미 상·하원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제재를 면제할 수 있는 재량권을 행정부에 주는 예외조항을 마련했다. `의미 있게 거래를 축소한 경우`에도 제재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재량권도 행정부에 위임했다.
이 법은 또 국제 원유 수급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법 발효 후 90일 동안 국제 석유시장에서 이란산 대체 물량이 충분한지를 점검하고 대체물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제재 착수를 연기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현재 한·미 동맹의 특수성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등 국가안보적 이해관계를 내세워 예외조항 인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정부는 미국의 이란 제재 법이 규정한 석유 수입 금지 등에서 `예외` 또는 `면제(waiver)`조항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외교력을 집중하기로 했다"며 "동맹으로서 미국의 이란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국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0% 면제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 법의 예외를 적용받으려면 `이란산 석유와 석유제품 수입이 미국 정부가 판단할 때 현저히 감소`해야 하는데 최근 수년간 한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은 양은 다소 줄었지만 액수 측면에서는 거의 줄어들지 않은 상황이다.
이 소식통은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상당히 줄이면 예외적용을 받을 여지가 있지만 내년 7월께 이 법이 발효될 때까지 한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을 갑자기 줄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총 원유수입량의 약 9.6%를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 수입 대금은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이란중앙은행에 개설한 원화계좌를 통해 우리의 수출대금과 상계처리하는 방식으로 결제하고 있다.
이란은 하루 평균 4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중 25만배럴가량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란산 원유는 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싼 편이다. 다른 거래선을 찾아 원유 수입 계약을 하더라도 그만큼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정부 소식통은 "이른바 `이란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가 불가피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시간을 버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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