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최악의 해를 마감하고 있다.
운명의 날인 지난 3월 11일 오후 북동부 해안지역인 도호쿠(東北)를 강타한 규모 9.0의 대지진은 높이 30m 안팎의 사상 최악의 쓰나미를 몰고 오면서 엄청난 피해를 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쓰나미로 전원이 차단되면서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가 냉각기능 마비로 수소 폭발을 일으켜 최악의 방사성 물질 유출 사고를 냈다.
대지진 발생 9개월이 지났지만 일본은 아직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테(岩手)현, 미야기(宮城)현, 후쿠시마현 등 도호쿠 주민 33여만명은 여전히 피난생활을 하고 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요즘도 시간당 1억 베크렐의 방사성 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 복구 지지부진 = 미야기와 후쿠시마, 이와테 등의 대지진과 쓰나미 집중 피해지역은 쓰레기 처리에 급급하고 있을 뿐 아직 본격적인 복구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정부에 속도감 있는 복구와 과감한 재정 투입을 주문하고 있지만 지진 발생 6개월도 안 돼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으로 정권이 바뀌는 등의 정치 불안으로 총력 복구체제 가동이 늦어졌다.
일본 정부와 국회는 최근에야 본격적인 복구를 위한 3차 추경예산 12조1천억엔과 소득세 등의 복구증세 법안을 처리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복구 비용으로 16조2천억엔, 10년간 23조엔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도호쿠 3개 현은 향후 10년간 30조엔 이상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피해 복구는 주민 거주지역의 고지대 이전, 농지와 해안 방조제 정비, 끊긴 해안 철도 보수 공사 등이 시작돼야 본격화한다.
현재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인해 거처를 옮기거나 피난한 사람은 32만8천900명이다. 이들은 공영주택과 임시 가설주택 등에서 생활하면서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
◇ 사고원전 수습 아직 먼길 = 쓰나미 피해복구보다 더 시급한 것은 방사성 물질 유출이 계속되고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수습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사고 9개월여 만에 겨우 원자로의 안정 냉각인 `냉온정지`를 달성했을 뿐이다. 노다 총리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를 수습했다"고 선언했지만, 이는 압력용기 온도 등 지표가 스스로 정한 냉온 정지 기준치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일 뿐이다.
진정한 사고 수습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아득하다.
원자로의 온도를 섭씨 100도 미만으로 유지하는 냉온 정지로 추가 폭발이나 방사성 물질의 대량 유출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방사성 물질의 완전 차단에 이른 것은 아니고, 원자로 내부 상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사고 원전의 폐쇄도 큰 문제다. 정부와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핵연료를 회수하고 원자로를 해체하는데 최장 4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사고 원전 1∼4호기 가운데 우선 4호기의 연료저장조에서 핵연료를 회수한 뒤 멜트다운으로 원자로 내 핵연료가 격납용기에 녹아내린 1∼3호기의 핵연료는 향후 25년간에 걸쳐 회수하기로 했다.
사고 원전의 수습을 위해서는 원자로 건물 내에 근로자가 투입돼야 하지만 방사선량이 높아 작업을 본격화하지 못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원전 부지 내에서 지하수 등의 형태로 하루 400t씩 증가하는 방사성 오염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바다 방출을 추진해야 하는 실정이다.
일본 정부는 사고 원전을 폐기하는데 1조1천500억엔, 사고 피해 배상에 향후 2년간 약 4조5천억엔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 식품 안전이 과제 = 원전 사고로 토양과 바다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면서 일본의 식품 안전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각종 조사와 측정에 의하면 수도 도쿄를 비롯한 일본의 거의 전역이 방사성 세슘에 오염됐다.
최근에는 일본 최대의 식품회사인 메이지(明治)가 제조, 판매한 분유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돼 큰 파문이 일었다.
검출된 세슘은 분유 1㎏당 최대 30.8베크렐로 미량이었지만 철저한 위생안전 장치를 갖춘 유아용 분유에서 검출됐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쌀 등 농작물도 안전하지 않다. 지난달에는 사고 원전에서 60㎞ 떨어진 후쿠시마현 오나미(大波)와 다테(伊達) 지역에서는 기준치(1㎏당 500베크렐)를 넘는 세슘이 검출돼 출하가 정지됐다.
후쿠시마현은 지난 10월 사전 조사를 거쳐 농작물 재배 금지구역 외의 후쿠시마 쌀이 안전하다고 선언했지만 한 달만에 전혀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천㎞ 떨어진 캄차카 해역의 심해에서도 방사성 세슘이 검출되는 등 바다 오염도 심각하다.
일본에서 먼바다까지 세슘에 오염됐다는 것은 일본 주변 바다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슘137의 경우 반감기가 30년이어서 향후 장기간에 걸쳐 농작물과 수산물의 오염 문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식품 안전이 사회문제화했지만 일본 정부와 자치단체는 뒷북 조사로 일관하거나 충분한 예방 조처를 하지 않고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다 총리는 일본의 식품 안전성을 부각하기 위해 후쿠시마산 쌀을 먹겠다고 선언했지만 일본 국민도 정부의 발표나 대응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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