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명시돼 논란이 됐던 보수-진보 진영의 학자들은 기고문 등을 통해 연일 날 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진보 성향의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인 이인재 연세대 교수는 `역사와 현실`(제82집)에 기고할 예정인 `역대 대한민국 헌법의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보다 역대 헌법 정신을 계승하는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를 역사교과서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당 역사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정당의 정강으로 사용됐다. 박정희의 혁명정부는 1961년 12월 7일 기자회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선언했으며 1963년 2월 26일 제정된 공화당 강령 1조에는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며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확립을 기한다`고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했다.
이 교수는 "특정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강으로 채택하는 것 등은 충분히 장려할 만한 일이지만 역사교과서 현대사 단원을 자유민주주의를 핵심어로 해 편찬토록 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서 "교육적 용어가 아니라 정치적 강요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역대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곧 자유민주주의라는 주장도 "학문적, 헌법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과 1948년 제헌 헌법 이래 헌법정신은 민족단결과 민주주의 여러 제도의 확립을 통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이 많이 참조한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은 자유를 `liberal`이 아닌 `free`로 표현했다면서 법제처도 지난해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번역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이 수정의 근거로 제시한 역대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곧 자유민주주의라는 주장은 학문적, 헌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우파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국제사적 관점에서 본 한국 현대사의 재조명`이란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유지해 왔다는 주장을 폈다.
권 교수는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이념의 성장`이라는 발표문에서 "우리의 역사를 성찰해 보면 이념들의 갈등과 투쟁 속에서도 건국 이후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탄생은 곧바로 자유민주주의 정체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40년대와 1950년대 일간지 기사와 사설 등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미군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건국을 도운 미국이나 건국의 주역들도 한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사회민주주의적 노선을 다소간에 가진 중도파 내지 혁신정당들이 그들의 노선을 가지고 활동했다"면서 "조봉암의 진보당이나 4·19 이후의 혁신세력의 등장이 보여주듯 이들이 대중의 지지를 상당할 정도로 확보한 적도 있기는 하지만 이들조차도 자유민주주의 정체를 부정하진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당 혹은 사회세력의 경쟁은 누가 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더 잘 실현할 수 있었는가의 경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정체였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대한민국 현대사를 전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좌파학자들이 교조적 인민민주주의 사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역사 앞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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