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정치적 휴지기를 끝내고 4ㆍ11총선으로 원내로 복귀하자마자 최다선 의원으로서 입법부 수장에 올랐다. 제11, 12, 14, 15, 16대에 이어 19대 총선에서 대선 중구에서 6선에 성공했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로 여의도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정치적 경륜을 바탕으로 원외 친박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육사를 졸업했으나 부친은 충남대 총장을 지낸 학자 집안 출신이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호방한 스타일이지만 “차라리 부러질지언정 소신은 굽히지 않는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강직한 성품이다. 육군대 교수로 있다가 1980년 신군부 집권 후 중령으로 예편, 민정당 조직국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37세에 민정당 전국구 의원직을 승계하며 11대 국회로 진출했고 13대 총선서 낙선한 것을 제외하고는 16대까지 내리 5선을 기록했다. 1995년 당시 김종필(JP) 명예총재가 이끄는 자민련에 합류한 그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DJP공조’ 체제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내는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그러나 내각제 포기 등을 둘러싸고 김 명예총재와 의견이 충돌하면서 자민련과 멀어졌다. 그의 존재가 여권에 부담이 될 때도 있었다. 2001년 자민련을 국회 원내교섭단체로 만들어주기 위해 여당인 민주당 의원 3명이 자민련에 입당하는 `이적파문’이 벌어지자 자민련 부총재로서 “정도를 벗어난다”며 반발해 당으로부터 제명됐다. 같은해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최고위원까지 지냈으나 2004년 총선서 낙선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여권의 대권주자로 부상해가는 과정에서 최병렬ㆍ김용갑 전의원 등 7명의 핵심 원로그룹의 일원으로 정치적 자문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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