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문화원(원장 윤대웅)은 최근 울진문화휘보 7호를 발간해 많은 군민들과 회원들의 알권리를 충족하며 문화인맥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이번 ‘울진문화 彙報’ 목차에는 △후토제의 의례과정 △‘전,주,남,윤,최,장...’의 유래는 무엇일까? △문인화란 무엇인가? △망주석에 새겨진 세호 △문향 울진의 연원-8편, 울진인의 과거등과자 △울진지구의 역사적 환경과 사람의 동향 △월송정 명칭유래 고찰-비선은 화랑이다 △불영사 환생전 설화는 사실일까? △불영사 시창기 지은이는 한림학사 류백유 △장대룡 장군,병자호란 후 청태종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다 △부록-‘울진군지 다시 읽기’ 연재 목록을 만들었다.윤대웅 울진문화원장은 ‘문향 울진의 연원 – 맺는말’을 통해, 지리적으로 서울과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한 동해벽지로 과거에 응시할 기회가 적었고 역사적 사건과 연루되어 과거등과, 관직등용이 제한됐을 당시의 정치 환경을 미루어보면 고관의 연맥이 적었을 것이며, 따라서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이 희박하였음에도 이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을 숭상해온 사실들을 향토 문풍(文風)을 짐작케한다. 울진 문풍의 경향을 보면 고려시대의 과거 급제 패지인 장량수 급제 패지(국보 제181호) 오지였던 고을임에도 과거등과 선비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고려시대 문과급제자로 18인이 군지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어려운 사건들의 와중에서도 문과등과 33명 생원,진사급제 81명이었다.(중략)이렇듯 문향(文鄕)이라고 천명(闡明)한 문건은 1826년 향토 유림들이 과거 시험 응시 진정서에 울진을 다사지향 ‘多事之鄕’이라 한다고 했고, 1971년 간행한 울진군지에 개재된 군민헌장에 “일찍부터 예절(禮節)을 다듬고 글 잘하는 문향...”이라 했다.(중략)이와 같이 학문을 숭상해온 고을임이 분명하다. 문향예향이라 하는 타지역의 매김말(지명수식어)에도 문헌의 고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성된 말을 천명한 것이며, ‘문향 울진’은 울진 선인들이 즐겨 써왔으며 지리적 여건이나 인구수 면에서 또 경제적 면에서 대비해보면 다사지향이라 한 것이 수긍이 되며, 고관의 벼슬이나 대문호(大文豪)가 배출되지 못한 점 등은 정황을 미루어 보아 과거응시 진정 등 이 또한 이해되는 부분이다.따라서 문향울진이란 문헌기록이나 고증에 의해 명명(命名)한 것이 아니라 해서 조금도 의아해 할 것이 아니다. 불의에 불복하는 충절의 기질은 고려복벽운동, 단종복위운동 등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관직등용이 제약 돼 고관 인물의 배출이 적었으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을 숭상해온 문향임에 손색없는 고을이다.(중략)윤대웅 울진문화원장은 “이와 같이 울진의 자존심이 매김말 문향이란 수식어는 언제부터 써왔으며 그 연유와 배경 등 그 근거에 대하여 대부분 모호하게 느끼는 경향”이라며 “고증할 만한 자료를 모아 정리하여 울진인이면 누구나 문향을 이해하고 그 뿌리와 연유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문향울진’의 근거를 정립하여 대의명분이 뚜렸한 문향울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연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