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순례> 이광석한세상 직립(直立)으로 간다계절 따라 날개를 좌우로 흔든다가지 끝에 잠시 멈춘 영원의 혈흔뿌리가 쏘아 올린 푸른 핏줄이다새 움으로 숨을 쉬고 잎사귀로 말을 하고낙화의 마지막 불꽃으로자신의 삶 한 겹 거두는장엄한 순례여,새로운 생명의 탯줄이여모진 비바람에 허리가 휘어도뿌리는 끝내 땅을 놓지 않는다 시의 산책로 굳이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된다. 추위도 오고 더위도 오고, 잎이 돋는 때도, 꽃 피는 때도, 열매 맺는 때도 다 나무에게로 걸어온다. 다가오는 일을 하나하나 맞아들이는 일이 곧 걷는 일이다. 온 세상이 나무에게 걸어와 주므로 나무는 한 자리에서 모든 관문을 통과한다. 그러나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그 길이 순탄치 만은 않다. 꽃이 지는 일은 곧 새 생명의 단초(端初)가 되고, 동시에 새봄에의 부활을 암시한다. 꽃이 지지 않고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오묘한 이치가 존재한다. 나무의 일생은, 해마다 수고하여 삶을 영위해나가는 인간의 생애를 함축한다. 좋든 싫든 주어진 길을 가야하는 존재는 다 가련하다. 비바람에 가지를 흔들며 마지막엔 낙화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나무. 낙화는 ‘나무의 일생’의 끝이 아니다. 뿌리가 있어 새 생명의 원천이 되어주기에 그렇다. 서 있는 일이나 걷는 일이나 다 숨 쉬며 살아가는 일이다. ‘새로운 생명의 탯줄이여 (중략) 뿌리는 끝내 땅을 놓지 않는다’는 시어는 생명의 원천이 강인함을 표방하고 있다. 나무의 기나긴 순례의 힘이, 그리고 인간의 모진 삶의 의지가 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