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새벽> 박재우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는푸른 달빛미친 듯이 벌판을 헤집다고요한 새벽을 깨우는바람의 노래죽은 자를 위한 랩소디*몰락하는 달을 붙들고놓지 않는겨울새벽의 집시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드러누운슬픈 노래낡은 주머니에 담겨진겨울새벽의 외로움
*광시곡(狂詩曲). 기악곡 중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곡들을 가리킨다.
시의 산책로 나뭇가지들이 하염없이 떨고 있는 겨울새벽이다. 달빛 처량하고, 찬바람은 쉴 새 없이 불어 댄다. 이 바람, 대체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혹여 누군가의 죽음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울음은 아닌가. 그 바람소리는 다분히 몽환적이다. 겨울에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약한 자는 더욱 약하게 된다. 나약한 자는 한없이 무기력해져 콘크리트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진다. 이러한 일들은 수천 년 간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생각해보면 그저 비정하기만 하다. 시의 화자(話者)가 제1연에서 ‘바람의 노래/ 죽은 자를 위한 랩소디’로 표현할 만큼 겨울새벽 바람소리는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이 바람을 두고 제2연에선 ‘슬픈 노래’라 했고, 시어 ‘낡은 주머니’는 극한의 외로움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듯 겨울새벽의 서정(抒情)은 독자들에게 슬픈 노래로 들리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생(生)의 슬픔이 겨울에 다 몰려 있을까? 이 시를 슬픔과 외로움으로만 읽어내지 말고, 그 슬픔과 외로움을 즐거이 읽어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