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올 때까지> 이건청밤 깊고안개 짙은 날엔내가 등대가 되마넘어져 피 나면안 되지안개 속에 키 세우고암초 위에 서마네가 올 때까지밤새무적(霧笛)을 울리는 등대가 되마 시의 산책로 안개가 농후하게 낀 바다 수면 위에는 밤이 깊다. 흐리디흐린 바다에는 선박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당연히 등댓불이 켜지고 일대에 고동이 울린다. 이 소리가 무적(霧笛)이다. 무적은 안개의 출현 때에만 존재한다. 인생이란 것도 같은 원리로 작동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그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오는 길을 열어주는 자가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가. 그러한 행동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전제되어 있다. 오늘날처럼 신의나 지조가 헌신짝처럼 던져지는 시대에선 초심(初心)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없다. 흔한 말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 아닌가. 신의의 유지에는 기다림과 외로움이란 희생이 따른다. 안개 낀 바다 위에서 ‘등대’가 되어야 하고, ‘암초’ 위에 서 있어야 하며, ‘무적’을 울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로운 등대에 오른 채, 그 한 사람이 올 때까지 무적을 울리겠다는 화자(話者)의 의지는 조용하지만 결연하다. 이 시 전체에서 보이는 절제된 언어는 간결미로 직조돼 있고 그것은 매우 견고하다. 그 간결미가 화자의 일편단심을 돋보이게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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