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이 배태한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송리재 골포천에 서면 ‘물이 옷 벗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물이 옷 벗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영남의 삶과 문화를 잉태한 태백산맥과 낙동강이 어울려 영남 700리를 적시며 낙동정맥은 아마득한 옛적부터 지금까지 또 셀 수 없는 앞날까지 사람살이를 보듬고 모둠살이를 만든다.강과 내는 필연적으로 길을 만든다.길은 길로 이어져 삶의 곡절을 껴안아 기필코 마을로 닿는다.낙동정맥 트레일은 영남사람들의 핏줄이다.낙동정맥 트레일 울진 구간의 시작은 인근 봉화군에 속한 산중의 역사(驛舍) 승부역 건너편 송이재(松利峴)로 이어지는 ‘벼리길’부터 시작한다.송이재는 낙동강의 지류 골포천이 만든 고개마루다.‘눈꽃축제와 백두대간 협곡열차’로 이름난 승부역은 울진사람들에게는 아쉬운 기억의 현장이다.본디 승부역은 울진의 소유였다.지난 1956년 강원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서 영암선 개통에 따라 보통역으로 산중사람들의 애환과 삶을 실어 날랐다. 지난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시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서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로 편입됐다.하늘을 받치고 있는 금강소나무의 위용이 그렇고, 물살이 휘감고 도는 아마득한 절벽이 그렇다.절벽 낮은 자리에 뱀허물처럼 가느다란 길이 흐릿하다. 조도잔(鳥道棧)이다. 조도잔은 벼랑과 벼랑을 잇는 구름사다리를 뜻한다. 울진사람들은 이를 ‘벼리길’이라 부른다.조선왕조 궁궐을 올리기 위한 나무로 금강소나무를 실어내면서 전내마을은 ‘산판마을’로 모습을 바꿨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다.‘황장목(黃腸木)으로 불리며 울진을 지키고 울진을 가꾼 금강송은 조선조 궁궐 대들보에서 일제강점기 수탈의 자원으로 마구잡이로 베어졌다.전내마을에서 베어진 금강송은 목두쟁이들에 의해 골포천을 지나 낙동을 건너 서울로, 경향각지로 건너갔다.금강송의 이명(異名)으로 붙박힌 ‘춘양목’도 이렇게 붙여졌다.전내마을로 이어지는 벼리길이 끝나는 지점에 잘생긴 금강송 연리지(連理枝)한 쌍이 사람의 발길을 멈춘다. 여는 연지리처럼 그저 손이나 잡고 있는 밋밋한 형국이 아니다.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매끈한 팔등신 금강송이 온 수족과 놈뚱아리를 똬리처럼 틀고 부비며 하늘을 받치고 있다.오래 헤어졌다 만난 연인처럼 사랑의 몸짓이 치열하다. 사랑의 정점이다. 바라보면 괜스레 가슴이 설레고 얼굴이 붉어진다. 금강송 연지리 아래서 그런 사랑을 꿈꾸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첫 길을 품고 있는 첫 마을인 전내마을은 지금 ‘산촌생태마을’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잘사는 울진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임광원 울진군수는 지난 2009년 12월부터 2014년 5월까지(6년간), 낙동정맥 주변에 산재한 산림과 문화자원을 연계한 숲길 조성과 트레일 조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새로운 관광자원을 확보한 낙동정맥 트레일 조성을 완료했다. 특히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승부역)에서 백암온천이 우리를 손짓하는 온정면 조금리까지 36km에 국·도·군비 등을 투입해 숲길조성, 쉼터 및 휴계공간 조성, 안내간판 및 이정표 설치, 기타 편의시설물 설치 등 트레일을 찾는 이용객들의 편의 제공과 숲길과 연계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여하는데 앞장서고 있어 흐뭇하다.그 곳을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조성하는 울진군은 천혜의 생태관광과 관광자원을 활용하여 힐링, 휴양, 체험 등 체류형 울진관광 육성하고 민·관이 힘을 뭉쳐 발전전략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경상매일신문=장부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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