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꿈> 윤고방
세상 무게를 온몸에 싣고달리는 오직 달리는달팽이 한 마리고놈의 꿈속에는세상 온갖 무지개들의가볍고 오직 가벼운천-근-만-근-집-한-채달팽이는 달린다
시의 산책로달팽이 껍질은 달팽이의 몸통이다. 그 몸통은 흡사 달팽이의 집으로 보인다. 등에 붙은 껍질은 자신의 기어가는 속도를 감안하면 사뭇 거대하거나 무거워 보인다. ‘달린다’는 표현이 다소 불편해 보이는 건 사람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그 느림이 달팽이로선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것인지 누가 알까. 몸통이 무거워도, 달리는 속도가 늦어도 묵묵히 갈 길을 가는 달팽이에게도 꿈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꿈은 무지개빛이라 말하고 싶다. 달팽이에게 영롱한 꿈이 있다면 천근만근 무거운 몸통조차 오직 가벼이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동물이든 미물이든 인간 아닌 존재들이 등장하는 우화(寓話)는 결국 ‘인간 이야기’이다. 등장인물만 대리(代理)되어 있을 뿐이다. 이 시를 두고 우화라고 말할 순 없지만, 우화적 속성을 띠고 있는 건 분명하다. 우리가 우화에서 배울 것은 암시적 교훈이다. ‘가볍고 오직 가벼운/ 천-근-만-근-집-한-채’란 역설적(逆說的) 시어는 독자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느리게 달려가는’ 달팽이의 삶도 우리가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삶의 또 다른 전범(典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