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소재 오어사는 운제산과 오어지에 둘러싸여 자연에 녹아들어 있다.
맑은 공기를 한껏 느끼며 오어사로 들어서면 사박사박 모래를 밟는 발자국 소리조차 고요하게 잦아든다.
모든 게 자연의 일부임을 실감케 하는 이곳에서, 자연을 닮은 미소로 찾아오는 이들을 따스하게 맞아주는 주지 각원 스님을 만났다.
<편집자 주>
. 이 오어사가 찾아오는 모든 분들께 괴롭던 사람도 행복해지고, 우울했던 것도 이겨낼 수 있는 극락, 힐링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물러가고, 완연한 가을이 돼 맑은 날의 하늘은 높고 청명했다. 바람은 전보다 쌀쌀해졌고, 운제산은 조금씩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가고 있었다.오어사에 도착하는 순간 이 모든 게 눈에 들어왔다. 지치기만 하는 현실을 벗어나자 그제야 새삼 가을임을 느꼈다.
부드러운 흙바닥을 밟으며 절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서부터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이하는 주지 각원(59)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스님과의 만남조차 ‘업무’라는 생각에 굳어있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함께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자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절을 찾아오는 이들이 힐링을 하고 돌아가길 바라는 각원 스님의 마음처럼, 이미 지친 심신은 위로를 받고 있었다.
각원 스님은 지난 2014년 주지 스님으로 부임하면서 오어사와 인연을 맺었다.
그 전에도 오어사의 주지 스님을 맡을 것을 권유 받았지만 거절했었는데, 결국 맡은 걸 보면 인연인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주지 스님으로 부임할 당시 오어사는 이미 `천년 고찰`이자 `포항시 대표 관광명소`로 유명한 사찰이었다.
절의 뒤편엔 웅장한 운제산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옆으론 드넓은 오어지가 펼쳐져 있어 4계절 중 특히 가을이면 수려한 경관을 자랑했다.
`내가 행복한 순간이 곧 극락`이라는 부처의 말씀을 실천할 곳으로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점이 있는 곳이었다.
각원 스님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오어사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불편 사항을 개선해 많은 이들이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전국적인 둘레길 열풍에 맞춰 누구나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오어지 둘레길을 조성했고, 방문객들이 불편하게 여겼던 화장실도 갖췄다.또 고질적 문제점으로 손꼽히는 주차난 해소를 위해 오어사로 향하는 길엔 공영 주차장도 설치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오어사가 연간 40만 명의 방문객들이 찾는 관광명소이자 힐링 공간으로 굳건히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각원 스님은 이 과정에서 자칫 훼손될 수도 있는 자연을 최대한 살리도록 신경 썼다고 밝혔다.
그는 "천년 전부터 자연은 오어사와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을 품었고, 오어사는 그렇게 스며들어 지금까지 건재해왔다"며 "치유 받고 행복을 느끼는 `힐링 공간`도 결국 자연이 있기에 가능한 만큼 이를 훼손하는 순간 의미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힐링 공간` 외에도 각원 스님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템플 스테이 등을 통해 절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부에겐 불자가 아닌 이상 찾아가기 조금은 어려운 곳이다.
스님은 그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절을 찾아오는 불자 뿐만 아니라 관광객, 등산객 등도 반갑게 맞이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고, 한 달에 한 번 무료 국수공양 행사를 갖기도 했다.
각원 스님은 “이젠 절도 옛날처럼 폐쇄적인 공간에 머물러선 안 된다”며 “누구든 편안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와 차를 마시고, 밥도 먹고 과일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열린 공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가치관은 기독교, 천주교 등 타 종교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각원 스님은 “모든 종교의 목적은 ‘행복’이고, 이를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자비를 베풀고 봉사를 펼치고 있다”며 “교회의 목사님도, 성당의 신부님과 수녀님도 넓게 보면 인연이고 가족인 분들이므로 어떤 종교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고 말했다.각원 스님은 올해로 출가한 지 35년이 됐다.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스님에겐 절, 스님, 불경 등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지만, 일찍부터 ‘스님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스물넷 대학생 시절, 방학동안 공부를 위해 찾아 간 절에서 본 스님들의 참선 모습이 너무나도 크게 와닿는 순간 출가를 결심했다.
당시 각원 스님은 ‘나 자신을 알고 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일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이를 위해 부지런히 부처의 말씀을 공부하고 절을 개선시키는 한편, 베트남 다낭에 한글 학당과 직업 훈련원, 어린이 집 등을 지었다.이 정도면 충분히 목표를 이뤄나가고 있다고 여길 법도 한데, 각원 스님은 “사실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건 아직도 좀 어렵다”고 의외의 말을 꺼냈다.이어 “중생과 부처는 생각의 차이인데, 살다보면 내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괴로운 일이 많아지고, 때론 그 마음이 제어가 안 되거나 화가 날 때가 있다”며 “그 때가 스님인 나에겐 가장 괴로운 위기의 순간”이라고 설명했다.주지 스님으로서 오어사의 변화를 완성시키고 난 뒤의 목표를 묻자 "전생의 업을 닦고, 과거의 잘못된 생각을 참회해 부처가 될 수 있도록 더 공부 할 것"이라고 답이 돌아왔다.
향긋한 차 한 모금을 머문 스님의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만연하다. 아마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부처의 미소와 똑같아질 것이리라. 그런 기대가 들었다.
[경상매일신문=김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