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슬> 엄한정그리운 사람을 떠나서세상살이는 승패 없는 바둑이었다이제사 오동나무 그늘 아래 쉰다기다림이 무너지는 시간에적요한 골목으로 들어서는 어스름시간을 거슬러 꿈꾸는 동안청한 듯이 황혼이 찾아왔다저녁 빛에 찬란한 이슬 보며차 한 잔에 갈한 목을 적신다시의 산책로-인생을 살아가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고 흔히 말한다. 이는 어떤 길로 가야 인생길을 제대로 갈 수 있는 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인간이 꿈을 성취하기 위한 길은 다양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기려고 진종일 벌인 싸움에 승부가 가려지지 않는다면 그 손해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싸움을 ‘손해’라 단정 지을 수 있는 이유는 물론 싸움에 들인 엄청난 분량의 에너지 때문이다. 이 시는, 가깝게는 하루의 일과에 대한 성찰을, 멀게는 생(生)에 대한 반추(反芻)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 의미는 다분히 중의적(重意的)이다.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은 고즈넉하면서도 적요하다. 그 누구나 영아기에서 출발해 중장년기까지 다 보낸 후, 마침내 노년의 시점에서 생을 되돌아보게 되면 으레 아득한 회한 속에 머물게 된다. 생(生)의 저녁에 석양이 자아내는 노을을 응시하며 지난 시간에 대해 결코 서러워할 필요는 없으리. 오히려 차 한 잔으로 지난 시간들을 품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인간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