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진갑을 다 지내고 인생 후반전 전반에 들어서니 어떻게 살다가는 게 좋은 것인지 많은 생각이 든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만 후회하지 않고 살다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곳도 사람도 없으나 간혹 가슴에 와 닿는 글을 보면 혼자 보고 버리기가 아까운 글이 종종 있다.오늘은 최근에 지인이 보내준 ‘趙(조)淳(순)’(89) 박사의 글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 지면을 빌려 싣다.고향이 강릉이며 서울 봉천동에서 25년째 살고 계신다는 경제부총리, 서울시장을 지내신 조 순 박사의 최근 글이다.나는 사람의 일생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것으로 보고 있다. ‘고중유락(苦中有樂)’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은 원래 즐거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인구가 이렇게 많을 수 있겠는가?“그럼 늙고 죽는 것도 즐겁단 말이오?”아마 이런 반론이 있을 것이다.글쎄 늙고 죽는 것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 의미를 잘 안다면 얼마든지 달관할 수는 있을 것 같다.장자(莊子)는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죽고 사는 것을 항상 보니, 이제 눈물이 없네’라는 구절이 있다.그러나 인생을 즐겁게 보내자면, 일정한 계획과 수련이 필요하다.중국 송(宋)나라에 주신중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인생에는 다섯 가지의 계획(五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생계(生計), 둘째는 신계(身計), 셋째는 가계(家計), 넷째는 노계(老計), 다섯째 사계(死計)가 그것이다.생계(生計)는 내 일생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고, 신계(身計)는 이 몸을 어떻게 처신하느냐의 계획이며, 가계(家計)는 나의 집안, 가족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다.​노계(老計)는 어떤 노년을 보낼 것이냐에 관한 계획이고, 사계(死計)는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이냐의 설계를 말한다.“당신에게도 노계(老計)가 있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있지요” 라고 대답하고 싶다.“그것이 무엇이오?”라는 물음에는 `소이부답 [笑而不答]`, 말을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사는 집 이야기를 한다면 그 속에 나의 대답 일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나는 달동네로 유명한 봉천동에 살고 있다. 25년 전 나는 관악산을 내다보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대지를 사서 집을 지었다. 당시에는 주변도 비교적 좋았고 공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 주위는 그때와는 전혀 딴판이 됐다.단독 주택은 거의 다 없어지고, 주변에 5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다. 주차도 어렵고, 지하철에서 이 집까지 오자면 가파른 언덕길을 허덕이며 올라와야 한다.처음 오는 사람 중에는 ‘이 집이 정말 조순의 집이냐? 동명이인이 아니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아무튼 25년을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 마을에 나밖에 없다.아이들은 날보고 이사를 가자고 한다. 좀 더 넓은 곳, 편한 곳으로 가자고 한다. 자기들이 모시겠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 같다. “여기가 어떻다고 이사를 간단 말이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다. 다소의 불편은 참고 지내야지, 사람은 너무 편해도 못 써. 어딜 가도 먹는 나이는 막을 수 없고, 인생의 황혼은 짙어지는 법.​지난 25년의 파란 많은 세월을 이 집에서 사고 없이 지냈고, 지금도 건강이 유지되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지,내겐 이 집이 좋은 집이야.” 이 집에는 좁은 대지에 나무가 많다. 모두 내가 심은 나무들이다. 해마다 거름을 주니, 나무들은 매우 잘 자라서 이제 이 집은 숲 속에 묻혀 버렸다.감나무엔 월등히 좋은 단감이 잘 열리고, 강릉에서 가지고 온 토종 자두나무는 꽃도 열매도 고향 냄새를 풍긴다. 강릉에서 파온 대나무도 아주 무성하고, 화단은 좁지만 사계절 꽃이 핀다.이 집과 나무, 그리고 화단은 아침 저녁 내게 눈짓한다“당신이 이사를 간다구요? 가지 마시오! 지난 25년의 파란이 압축된 이 애물단지! 내게 이런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2016. 07. 조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