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은 최근 베이징(北京)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뒤 미 관료들에게 “내가 믿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조언자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거명한 인물은 미국에서 ‘중국법 연구의 대부’로 불리는 제롬 코언 뉴욕대 법학교수였다. 이후 미 정부측의 연결로 두 사람은 수차례 전화통화를 했고, 코언 교수는 천광청이 정치망명 대신 유학이라는 형식으로 미국을 떠나는 ‘해결책’을 제시해 자칫 양국의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미 유력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5일(현지시간) 천광청이 최악의 곤경에서 찾은 코언 교수가 1970년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 납치됐을 당시 구명운동을 벌였던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코언 교수는 지난 1974년 ‘한국의 인권과 미국의 외교정책’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을 정도로 과거 유신 및 5공 시절 한국의 인권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는 1994년 김 전 대통령이 설립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의 해외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코언 교수는 또 대만 최초의 여성 부총통이었던 뤼슈롄(呂秀蓮)을 도운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고 WP는 전했다. 뉴저지주(州)에서 태어난 코언 교수는 변호사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뒤 2명의 대법관을 보좌했으며, 이후 하버드대와 UC버클리 등의 강단에 섰다. 공교롭게도 중국 공산당 창건일(7월 1일)에 태어난 그는 당시로서는 미국 학계에서 거의 관심이 없었던 중국법을 공부하면서 중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이어갔으며, 이를 위해 집에서 중국어를 독학하기도 했다. 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이 우리 미래에 아주 중요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중국의 법이 양국 관계에 아주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알았다”고 말했다. 코언 교수가 천광청을 만난 것은 2004년으로, 두 사람은 중국의 법체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며 친분을 쌓았으나 이후 연락이 끊긴 뒤 지난달 30일 전화통화를 통해 미국에서의 재회를 기약하게 됐다. 코언 교수는 천광청이 당초 중국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가족의 안전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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