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소규모 학교가 증가하면서 교육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적정규모의 학교 육성을 강화하고, 폐교를 귀농‧귀촌, 관광지 등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한다.비교적 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학생 수가 적은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 과연 통‧폐합만이 정답일까.의문을 풀기 위해 포항지역 내 초등학교 중 특별한 활동을 실시하고 있는 북구 기북면의 한 소규모 학교를 찾았다.<편집자 주>
신라시대 화랑 수련장소 손얼벌
전교생 23명의 ‘소규모 학교’
특별 활동으로 참된 교육 실현
道내 초교 중 유일하게 말 소유
매년 10월 교내승마교육발표회
운동ㆍ동물과 교감ㆍ인내심 쑥쑥
아이들 정서 발달에 ‘큰 도움’
건강 활동ㆍ예술 활동 함께 병행
포항시 북구 기북면은 신라시대 화랑들의 수련 장소였던 손얼벌이다.길고 긴 세월이 흘러 신라와 화랑의 존재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지만 기북초등학교에선 ‘승마교육’을 통해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지난 7일 오후 포항시내에서 약 40분을 달려 도착한 기북초는 전교생 23명이 전부인 작은 학교였다.
포항 시내의 학교와 놓고 본다면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소규모학교지만, 방과 후 승마 교육이라는 특별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참된 교육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었다.이날 방과 후 승마교육 대상은 초등학교 4학년.승마 교육 장소인 기계면 봉좌마을의 승마장으로 향하자 말을 끌고 나와 연습을 시작하는 5명의 아이들이 보였다.
“허리 좀 더 펴고. 좀 더 뒤로 가서 앉아야지.”
교관의 말에 모래판 위에서 말을 타고 연습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작은 체구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의젓하게 말을 타는 모습은 놀랍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모래판을 둥글게 돌 뿐이지만 아이들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아이들은 때때로 허리를 바로 세우고 고사리 손으로 힘껏 고삐를 잡아당겼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에게 말을 넘겨주고 내려오는 아이에게 소감을 물으니 “재미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쑥스러운 듯 짧고 간결한 대답이지만 진심이 담긴 명쾌한 대답이었다.
차례를 바꿔 다른 아이들이 말을 타고 모래판 위를 돌았다.
타박타박. 말발굽 소리가 울리면서 아이들은 언뜻 긴장감을 드러냈다가 이내 더 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기북초등학교의 승마 교육은 지난 2011년 기북초 총동창회의 후원으로 시작됐다.
한국마사회와 경북도, 포항시의 후원으로 2012년 12월엔 엄격한 검수를 통해 말 5필을 구매해 본격적인 승마 교육을 시작했다.
경북도 내 초등학교 460개교 중 승마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는 포항 기북초, 구미 옥성초, 영천 중앙초 3개교다.
이 중 유일하게 학교에서 말을 소유하고 있는 곳은 포항 기북초 뿐이다.
각자 바비, 클라우드, 우주, 링고, 은비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말들과 함께 기북초 학생들은 화‧수‧목요일 오후 2시~3시 30분까지 승마를 배운다.
화요일과 수요일엔 고학년인 5·6학년 학생들이, 목요일엔 저학년인 4학년 학생들이 봉좌마을의 승마장을 방문해 배우며 그날 말들의 건강 상태에 따라 함께 할 말을 택한다.
첫 승마 교육 때 기북초 학생들은 인근에 승마 교육을 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어 남구 동해면에 위치한 승마장까지 가야만 했다.
스쿨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달려야 하지만 말 타는 시간이 기다려져 지루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지금은 지난해 봉좌마을에 승마장이 생긴 덕분에 그곳으로 가 배우고 있다.
학교에서 승마장까지는 스쿨버스로 10여 분. 가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어 승마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 셈이다.
말을 타는 일은 간단해 보이거나 혹은 아예 두려운 일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안전사고까지 우려되는 만큼 아이들은 항상 교관의 지시 아래 말을 타고 배운다.먼
저 말을 이해하기 위해 승마 안전수칙을 익히고, 직접 말을 손질하고, 끌고, 먹이를 준다.
말 역시 하나의 생명체인 만큼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친숙해졌다면 말에 오르고 내리는 방법과 안장 조절, 손의 자세와 발동작 등을 배운다.
이러한 기본기에 능숙해지면 말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과 더물어 평보, 속보로 전진, 구보 등 다양한 움직임을 배우고, 최종 단계로 연결의 복종, 리듬유지, 굴곡과 수축, 기초 마장마술 등의 기술까지 익힌다.
말 이해하기부터 다루기까지, 승마를 배우는 일이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인 만큼 인내심과 배움의 자세가 필요하다.
어른도 어려울 일이지만 아이들은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다.
이렇게 갈고 닦은 실력은 매년 10월마다 교내승마교육발표회를 통해 선보인다.
저학년 학생들은 말을 타고 도는 정도지만, 고학년 학생들은 타고 바깥을 달릴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니 화랑의 후예다운 늠름한 모습이 상상된다.
지난 2011년부터 방과 후 승마 교육이 실시된 뒤,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에게도 꽤 호응이 좋다.
학교에서 직접 승마 교육을 받는 일이 흔치 않은데다, 운동이 되는 건 물론이고 동물을 다루면서 교감, 인내심 키우기 등 아이들의 정서 발달까지 일석이조이기 때문이다.
김판귀 교장은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이런 독특한 활동을 실시하고 있으니 다른 학교에선 부러워하기도 한다”며 “선생님들도 말을 잘 타는 줄 알아서 아이들과 같이 배워봐야 하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북초는 승마 외에도 탁구, 택견, 바이올린 등 건강을 위한 활동과 감수성을 키우는 예술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앞으로 학생들이 증가할지, 아니면 더욱 감소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승마를 통해 푸른 꿈이 영글어가는 기북초의 미래는 환하다.
[경상매일신문=김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