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 그대 하늘 우러러 눈, 높이 드십시오하늘 빛 눈으로 스며 맑은 눈물흐르게 하십시오사랑하는 이, 자유의 하늘아래 함께 살아가는 이 감동만으로도 그대,가슴을 열어 하늘 빛 한결, 그대의 골짜기에 흐르게 하십시오 오늘, 이 하루를 버려야 했던 이들을,수인의 몸으로 별리된 이들을,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부디, 그들을 위해눈, 높이 들어 저, 찬란한 빛을.시의 산책로 - 일상에서 보는 하늘은 수억만 년 전부터 인류가 보아온 하늘이지만 엄격히 따져보면 이는 우리의 착각에 기인한다. 시인 구상(具常. 1919-2004)의 연작시 「그리스도 폴의 강-24」를 보면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후략)’는 대목이 나온다. 옳은 말이다. 많은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물질의 상태가 절대 불변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하늘’이라는 보편적, 추상적 관점에선 ‘다 같은 하늘’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고난을 겪어온 자와, 평화 속에서 호의호식한 자들이 각각 보는 하늘이 동일할 리는 없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고난에 처한 자를 위문(慰問)하고, 사랑하는 자를 마음에 담아내는 일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에 속한다. 그러한 의미로 보면 하늘이란 모든 인간의 창문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시인은 독자에게 고난에 처한 자,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해준 영혼들을 상기할 것을 주문한다. 일반 군중이 알아서 깨닫기에는 그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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