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공항을 김해공항 확장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논란은 숙지지 않고 있다.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대구 의원들은 지난 1일 "신공항 용역에 대한 검증이 끝나기 전에는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해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정부의 김해신공항 결정에 불복 의사를 나타냈다. 신공항 불발로 실의에 빠진 시민들의 분노도 폭발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남부권신공항 범시도민추진위원회 소속 회원들은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해 ‘사실상 신공항 백지화’로 규정하고 ‘대(對)국민 사기극’이라면서 연일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부산시도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선물?’은 챙겼지만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40여년간 재산피해와 생활 불편을 겪었는데 김해공항 확장으로 삶의 터전까지 뺏길 위기에 놓이자 반발하고 나섰다. ‘김해공항 확장안’을 받아드린 서병수 부산시장과의 입장이 판이하게 달랐다.여기에는 서 시장이 정부의 김해공항 건설 계획을 수용하기에 앞서 해당지역 주민들과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서 시장의 소통부재에 대한 분노도 깔렸다.서 시장은 가덕도 유치가 불발되면 “시장직을 내려 놓겠다”고 배수진을 쳤었다. 급기야 주민들은 “끝까지 가덕신공항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하루아침에 정부 계획을 수용한데 대해 공약한대로 시장자리에서 물러 나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TK와 부산간의 동맹도 깨졌다. 신공항 유치 과정에서 상호간 도를 넘는 비방이 오가면서 불신의 간극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미숙한 결정이 갈등만 부추긴 꼴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갈등을 치유할 생각은 않고 지역민들과 동떨어진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김해공항 결정을 두고 ‘신의 한수’라느니 ‘솔로몬의 지혜’라느니 자화자찬만하니 분통터질 일이다. 사회갈등을 조정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이미 우리사회는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이념간의 갈등이 도를 넘어섰다. 여기에다 정부가 신공항을 놓고 영남권의 TK와 부산을 갈라놓은 우를 범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 갈등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포럼 3월호의 ‘사회갈등지수 국제비교 및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4개국 가운데 5위다. 우리보다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는 터키 그리스 칠레 이탈리아뿐이다.게다가 갈등의 골이 깊은데도 이를 관리하는 능력은 낮다. OECD가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우리정부의 관리능력이 하위권인 27위다. 사회갈등관리지수 역시 0.380에 불과했다. 이 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갈등 관리를 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밑바닥 수준이다. 최상위권인 덴마크(0.923)나 스웨덴(0.866) 핀란드(0.859) 네덜란드(0.846)는 물론 중위권인 영국(0.677) 프랑스(0.616) 일본(0.569) 미국(0.546)에도 한참 못 미친다.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사회갈등으로 빚어진 우리나라 경제적 손실은 연간 최대 24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의 갈등지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기만 해도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7~21%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갈등만 제대로 치유해도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재원도 단칼에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는 즉시 신공항 결정까지의 과정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한다.영남권의 반발을 `반대를 위한 반대`, `발목 잡기`나 `편 가르기` 같은 말로 치부해선 안된다. 5년전 이명박 정부시절 폐기된 김해공항 확장안을 다시 선택한 이유를 과학적,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5년전 걸림돌이 된 김해공항 북쪽에 있는 360m 높이의 돗대산과 소음, 용지확보 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지역 주민들이 받아드리지 않겠다면 김해공항 확장안은 과감하게 폐기하길 바란다. 2003년 대한민국을 혼란에 휩싸이게 한 전북 부안군의 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와 관련 참여정부의 대응책을 생각해보라. 당시 부안군수가 주민들에게 감금돼 폭행당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초래됐고 1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사법처리 되는 등 주민간의 갈등이 극에 달한 사건이다. 이에 참여정부는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방폐장 후보지 공모에 나섰으면 주민투표를 통해 2005년 경주시로 결정했다. 유치에 대해 주민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긴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큰 대가를 치르고서야 가까스로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