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는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찍고 기록해야 합니다. 셔터를 누르는 손에 굳은살이 생기고 지문이 닳도록 찍어봐야죠.”안성용(50) 포항시예술문화연구소장은 20년 넘게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뒷골목, 주택가 등 송도동의 변화를 렌즈에 담아 사진으로 남겨오고 있는 사진작가다.그를 만나기 위해 북구 상원동에 위치한 작업실 건물 앞에 도착하자, 창문 밖으로 반갑게 손을 흔들며 오작교를 건너라는 모습이 영락없는 예술가다.건물 입구까진 두세 걸음. 고무대야 위에 널빤지를 얹어놓은 오작교 없이도 성큼성큼 들어갈 수 있다.하지만 이 다리를 건너야 예술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레 밟고 건너가 커피 한 잔과 함께 그의 이야기보따리를 헤집어봤다.안 소장과 카메라의 인연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를 통해 시작됐다.그는 "1960~70년 대엔 귀한 존재였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시고 글을 적으시곤 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며 "고등학생 때 사진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카메라를 쥐고 놓지 않았다"고 추억을 회상했다.경일대 사진학과로 진학하면서 고향인 영양을 떠나 대구에 머물던 그는 1990년 포항공대 사진 담당을 맡게 되면서 포항으로 내려왔다.그는 “포항은 쉬는 날마다 대구를 갈 정도로 낯선 곳이었고, ‘길어봤자 1년 정도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며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지금까지 지내고 있는 건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조금씩 애정이 생겼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그 흥미 중엔 무수한 변화를 겪은 송도해수욕장이 있다. 송도해수욕장의 어떤 점이 26년 째 그의 발걸음을 이끈 것일까.안 소장은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송도해수욕장이 포스코가 들어서고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해수욕장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며 “밝음이 있다면 어둠도 있듯이, 포스코가 어둠이라면 지금의 송도해수욕장은 그 그림자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사실 송도해수욕장의 변화를 작정하고 찍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를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해수욕장이 제 모습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움에 지금까지 찍어오게 됐다”고 덧붙였다.그의 송도해수욕장 사진 속엔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 중 하나인 자연을 먹고 살기 위해 파괴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커다란 나무 상자 속 수많은 송도해수욕장 사진필름을 보여주던 안 소장은 낡은 라이카 카메라를 꺼내보였다.모든 걸 자동으로 맞춰줘서 셔터만 누르면 끝인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에 비하면 직접 손으로 셔터를 돌려 찍는 수동 카메라는 보잘 것 없는 구식 덩어리다.하지만 카메라의 원리는 다 똑같기에 아직도 이 손때 묻은 카메라가 좋다고 말하는 안 소장의 손엔 셔터를 돌리느라 오랜 세월이 겹겹이 쌓인 듯 두툼한 굳은살이 자리 잡고 있다.굳은살이 생기고 지문이 닳도록 많이 찍어봐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와 닿는다.안 소장은 본업인 사진작가 외에도 포항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창립된 포항예술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에게 영감과 자극을 받으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한편 ‘포항아트페스티벌’도 기획해 왔다. 올해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회원전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그는 포항에 반듯한 갤러리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안 소장은 “지난 2월 서울 인사동에서 송도해수욕장 사진전을 연 적이 있는데, 포항에는 이러한 사진, 미술작품 등을 전시할 갤러리가 따로 없다”며 “갤러리다운 갤러리를 만들어서 변화의 기록을 남기고,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안성용 소장은 정해진 틀이 아닌 자유로움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렌즈에 담아내고 있다. 변해버린 송도해수욕장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가 담아낸 기록은 영원할 것이다.[경상매일신문=김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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