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뜨기 홀로서기` 출판기념 해헌 김정규 전 경북행정부지사 회고연에서 지난온 과거를 회상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경상매일신문 “이제 여생은 남을 탓하지 않고 천명에 순응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나는 문학적인 재능을 타고나지도 못했고 또한 배움의 과정이나 공직 근무 기간에도 수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방법을 배우지도 못했으며, 크게 필요로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쓴 글들이 투박하고 매끄럽지 못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체험한 일들을 과장하거나 축소함이 없이 정직하고 진솔하게 표현하고자 애썼다는 점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과정에서 실수도 있었고 잘못한 점도 적지 않았으며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일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면 내 마음 한없이 기쁠 것만 같습니다.”`시골뜨기 홀로서기` 출판기념 울진출신 해헌 김정규 전 경북행정부지사 회고연이 지난 10일 오후 3시 울진관광호텔 대연회장에서 10개 읍·면에서 골고루 참여한 군민 500여 명과 함께 깊은 연민의 정을 주던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표하며 그동안 하지못한 마음의 빚을 내려 놓았다.회고연의 식전공연으로 문화원 사물놀이, 개회, 국민의례, 내빈소개, 축사, 서평, 인사, 꽃다발 증정, 축시 낭송, 축하 연주, 축배와 폐회식을 성료했다.이날 축사에서 경북도 공무원 후배인 임광원 울진군수는 “평소 존경하던 김정규 전 경북도 행정부지사의 회고연에 축사를 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며“면서기에서 행정부지사까지 ‘시골뜨기 홀로서기’의 책자를 읽으며 해헌 김정규 님의 진면목을 보았습니다. 항상 겸손하면서 지역을 사랑하고 아끼는 훌륭하고 진솔되는 모습과 자리의 높고 낮음이 없는 모습을 기억하며 울진사랑을 잊지않겠다”고 밝혔다.김덕영 전 충북도지사, 김복규 전 의성군수, 고향 후배인 주성영(변호사) 전 국회위원, 지역 후배인 주호영 국회의원(무소속), 새누리당 강석호(영양·영덕·봉화·울진군) 의원의 축전 낭독,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출신인 전 칠곡부군수를 지낸 황무룡 씨의 서평에서 “평가로는 각종 애환 게재와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행정부지사까지 전문가 정신을 탐독했다”며“ 책자내용을 쉽게 설명해 사용했으며, 공직사회의 인간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자서전을 3개월 전에 만들어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김정규 전 경북도 행정부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존경하는 여러분들을 보니 기분이 매우 좋다. 80이 되고 보니 뭔가 연민의 정을 가진 여러분들을 위해 근남면 마름동에서 11남매(6남 5여)의 살아온 인생 역정에서부터 살아온 과정들을 설명하면서 모든 방청객들이 마치 하나가 되어 조용히 경청하는 동참의 정을 나누며 기분이 좋아 인사시간을 많이 끌었다”고 밝혀 많은 존경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80년의 삶, 나를 중심으로 보면 긴 세월이지만 우주를 중심으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짧은 생이 아닌가.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좌우명으로 남들보다 잘나지는 못했지만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우직하게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 삶을 ‘시골뜨기 홀로서기’라는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의 말씀을 깊이 되새긴다. 내가 걸어온 길이 후대의 이정표가 될 수 없겠지만 울진 시골뜨기가 지방행정에 투신하여 면(面)서기에서 군(郡)서기, 도(道)주사, 중앙의 사무관, 서기관을 거쳐 시장, 부지사에 이르기까지 홀로서기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는 원칙을 중시하며 고집과 뚝심으로 굽이굽이 살아온 삶이 혹여 후배들에게 참고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변변찮은 삶이지만 한 인간이 이렇게 살다 갔다는 발자취를 남겨 두는 것도 후손들에게 조금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투박스럽게나마 글로 엮어 보았다”며 “이 책을 엮으면서 ‘사람들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의미를 새삼 인식을 했다. 책이 문자가 모여 단어로, 단어가 문장으로, 문장이 단원으로 이어지는 것들을 쓰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쓰면서 나의 삶 구석구석 잘잘못을 돌아보며 후회와 아쉬움을... 또 즐거움과 행복한 순간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다시 살면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는 뉘우침,나머지 여생을 바르게 살겠다는 다짐 등 내 스스로가 새롭게 재생되는 것 같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펴낸곳 도서출판 그루는 면서기에서 부지사까지 ‘시골뜨기 홀로서기’ 해헌 김정규의 삶을 통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과 같이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다면 언젠가는 그 길이 열리게 된다. 초판 1쇄 발행 2016년 5월 30일,차례는 Ⅰ,내 유년 시절Ⅱ,학창 시절과 6.25 Ⅲ,주특기 114의 군 복무 시절 Ⅳ,고향 면서기로부터 Ⅴ,중앙(내무부)근무 시절 Ⅵ,경상북도 부지사에 이르기까지 Ⅶ,공직에서 야인의 길로 Ⅷ,나의 가정,나의 삶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가운데서도 유독 관심을 가지는 것은 328페이지부터 364페이지까지 울진군수 출마를 위해 부지시직을 사임에서부터 경상북도 행정동우회관 신축에 착수편을 꼽을 수 있다.▷양자 구도의 울진군수 선거2002년 군수 후보 등록 일자를 며칠 남겨 두고 당시 현직 군수와 정모씨가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기 위해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하고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으나, 김중권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를(김정규) 지원하기 위해 울진군을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지어 주었다.그래서 울진군수 후보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김용수(민선3,4호기 울진군수)후보와 무소속을 표방하고 출마한 양자 대결하는 구도였으나, 막상 선거 운동을 시작하고 보니 예상과는 달리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나로서는 고향을 위해 마지막 봉사라는 일념으로 출마를 결심하였으나 유권자들의 눈과 마음은 전혀 달랐다.내가 군수라는 직위가 탐이 나서 출마하였다는 시각이 대다수였으며 군수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돈도 좀 쓰고 열심히 뛰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아 보라는 것이었다.선거 자금도 다다익선이다.내 형편으로 보아서는 내가 쓰는 선거자금의 규모도 그리 적은 액수가 아닌 듯하였으나 문제는 상대적이어서 내 쪽의 운동원들은 늘 활동비가 부족하여 고전한다는 하소연이 많았다.그래도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열심히 운동한 결과 여러 가지 정황이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개략적인 여론 조사가 나와 선거 캠프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평해읍사무소 앞 광장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합동 유세에서 확실히 우위를 점하였을 뿐만 아니라 포황에서 실시한 방송 토론에서도 상대 후보를 압도하였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선거가 끝났다 할 정도로 대세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투표일 이틀전에 이상 기류 감지그런데 투표일을 이틀 앞둔 날 아침부터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나를 지지해 주기로 했던 민선 2기 신 정 군수 계열 조직들이 이탈하여 김용수 후보를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 정 군수와는 울진중학교 후배일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2008년 지방 선거 때 대전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어 설마 그럴까 하는 심정이었으나 확인해 보니 모두가 사실로 드러났다. 서면 왕피리 한농복구회 투표소의 투표가 선거날 10시부터 중단되어 재개되지 않다는 곳이다. 왕피리 투표소는 일반인 투표자는 40여 명에 불과하고 한농복구회 회원들이 1천여 명이 넘는 조금은 특이한 투표소다. 오후 4시가 되어서여 투표가 재개되었는데 내 쪽 참관인이 본 바로는 상대방 후보에게 몰표가 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낙선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사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민선3기 울진군수 선거 270여 표 차로 낙선나는 잠깐 동안 마음을 내려놓고 지난 여섯 달 동안 이루어졌던 일들을 냉정한 자세로 뒤돌아보면서 무엇이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되짚어 봤다.결론은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하고 부덕한 탓이었다.당시 선거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참모들이 모여 앉자 여러 가지 애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주된 내용이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없으니 대법원에 당선 무효 소송을 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선 뮤효를 주장할 수 있는 사례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그 가운데서도 당시 울진군교통지체장애인협회에서 A모씨 회장 명의로 1천400여 명의 회원들에게 한나라당을 반드시 지지하라는 서한을 발송한 것 하나만으로도 270여 표 차이로 석패하게 한 주요 원인으로 충분한 것이다. 거기에 여러곳에서 제보된 불법 사례들까지 있으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한나라당지지 서한 발송 건은 이미 울진경찰서에 고발된 상태로 그 후 관련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은 바 있다.그러나 모든 것이 내 탓이요,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며 그 생각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낙선이 대장암 수술을 막다절제 수술 이전에 용종의 아랫부분을 뜯어내어 조직 검사를 하였는데 암 세포가 발견되지 않아 안심을 하였는데 아주 큰 용종이 발견되어 대구 경대병원에 입원하여 절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절제 수술 이전에 용종의 아랫부분을 뜯어내어 조직 검사를 하였는데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아 안심을 하였다. 그런데 절제 수술을 마친 다음 용종 끝부분을 조직 검사한 결과 암세포가 발견되었다면서 곧바로 암 환자 등록 조치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시경 절제 수술을 할 수 있는 한계점에 이러렀기 때문에 무척 힘들게 절제 수술을 마쳤다면서 아주 운이 좋았다는 병원 측의 설명이다.이 말을 들은 나는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문뜩 떠올랐다.만일 내가 울진군수에 당선되었더라면 내 성격으로 보아 당장 아프지도 않은 상태에서 임기 중에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을 리 없고 그러다 보면 암세포가 대장 내부가지 침투하여 개복 수술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을 것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울진군수 낙선이 대장 개복 수술을 막아 준 것이니 어쩌면 낙선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물론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했다.특히 김정규 부지사와 필자는 여러 가지로 인연이 많다.같은 고향 선후배로 필자가 대구일보 기자를 근무할 당시부터 부지사에게는 바른 소리로 잘 해 인과응보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어느날 고 김해성 울진군기획실장이 아까운 71세란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부지사는 집안이고 필자는 울진중·고 선배를 떠나 군청 문화공보실에 근무할 때 공보실장으로 모신 분 장례날이었다.평소 울진에서 검소하고 청렴하며 정도를 걷고 있던 실장님의 장례식에는 많은 비가 쏱아내리며 장례를 올리던 중 필자는 지인들과 함께 마음의 소주를 마시던 중 부지사님이 곁으로 오셔서 “‘부중아’ 내가 울진군수 잘 떨어졌제. 하자 필자는 저는 지금도 자다가 선거 생각만 하면 잠이 안옵니다”라고 대답하며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내가 울진군수가 되어 한 번 더할려고 증손자같은 사람들에게 술잔을 권하며 도와달라고 했을 거 아니냐”며 마음을 더러내 안타까움을 더해주면서 부지시님의 깊은 뜻을 명심하고 열심히 살아가며 좋을 글을 쓰는 기자로 마음을 굳히기도 했다. ▷경상북도 행정동우회관 신축에 착수최근 회관 신축 부지로 확보한 대구 송현동 798-238번지에 철근콘크리트 3층, 연건평 142평으로 확정하고 달서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 사업을 시행 중이다. 행정도우회 회장 임기는 2015년 말에 완료되었으나, 연말 총회에서 회관 건물이 준공되기까지는 김정규 부지사가 회장직을 맡아 달라는 강력한 요청이 있어 결자회지(結者鮰之)의 차원에서 2016년 말까지 연임할 것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임광원 울진군수와의 인연그럭저럭 4년의 세월이 지난 다시 지방 선거 철이 돌아왔다. 민선4기 울진군수 후보로 한나라당 김용수 후보와 전 민선2기 군수였던 신정 후보,경북도 경제통상실장을 지낸 임광원 무소속 후보가 출마했다. 임광원 후보의 요청에 따라 나는 임광원 후보를 지원하기로 하고 선거 캠프에 합류하여 지원 유세까지 하는 등 나름대로 애를 써 보았으나 낙선되고 말았다. 인지도 면에서도 뒤떨어졌을뿐 아니라 선거 자금도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거일을 3일 앞두고 임광원 후보 부부가 집으로 찾아와 지원 유세를 부탁해 왔다. 그때 상황으로는 당선 가능성이 크게 낮았으며, 그전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이 지원 유세에 나가는 것이 적절치 않을 것 같아 완곡히 사양을 하여 돌려 보냈다.두 사람이 돌아가자말자 함께 있었던 나의 큰 누님이 나를 향해 ‘동생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일어서서 나가는 두 사람의 실망한 표정을 보니 가슴이 짠해 온다’며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4년 전 내가 낙선했을 때가 연상되는 모양이었다. 그 후 이틀 동안 임광원 후보의 순회 유세를 하였으나 역시 역부족이었다.그러나 다시 4년이 지난 2010년 선거에서는 임광원 군수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현직 군수였던 한나라당의 김용수 후보를 누르고 울진군수로 당선되었으며, 2014년에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무소속 후보인 전찬걸 전 도의원을 큰 표차이로 이겨 무난히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하였다.두 차례 선거에도 지원 유세를 하는 등 나름대로 득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특히 김중권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으며 나와 함께 유세 활동을 통해 큰 힘을 보태 주기도 했다고 상기했다. ▷해헌 김정규 전 행정부지사 약력-강원도 김화에서 출생 –유소년 시절은 고향(울진 근남)에서 성장-노음초등, 울진중·고졸업-국민대학교 기업경영학과 졸업-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경영진단사) -면서기(근남면, 울진면) -울진군, 경상북도 근무 –내무부 세정과 사무관 –내무부 세재·조사·감사과장 –영천·구미·경주시장 –제주도·대구광역시·경상북도 부지사 -경북개발공사 사장 –(현)경상북도 행정동우회 회장.<저서> 지방세법 정해(공저) <서훈> 녹조근정훈장,황조근정훈장 해헌 김정규 전 경북도 행정부지사는 “6월! 싱그러움이 온 나리에 가득합니다.가정에 행복이 충만하시길 빕니다. 평소 도움과 수고 그리고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소중한 분들과 회고연을 함께하여 매우 만족합니다. 이제 여생은 남을 탓하지 않고 천명에 순응하면서 나옹 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를 읊으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경상매일신문=장부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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